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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사실은 별 거 아닌 것

by 문타쿠

서른이 되었다. 만 나이로는 스물여덟이지만, 한국 나이로는 분명 서른이다. 어릴 적에 상상했던 서른은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때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모든 것을 이룬 멋진 어른만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높은 빌딩숲 사이를 바쁘게 걸어 다니며, 당당하게 커리어를 쌓고, 적당히 괜찮은 사람을 만나 미래를 계획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도시를 누비며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성수동 한가운데에서 광고주와 대행사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하루를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다. 모은 돈은 많지 않고, 연애는 언젠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잊혔다. 빌딩숲의 커리어우먼이 아닌,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평범한 미디어 업계 종사자일 뿐이다. 어릴 적에 꿈꿨던 서른의 모습과 지금의 나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고, 그 괴리감은 때때로 나를 조금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다가올 때쯤,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스물아홉에 아빠와 결혼해 서른한 살에 나를 낳았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결혼은커녕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그 나이에 이미 한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니. 엄마가 그 시기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계획을 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는지 상상해보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도저히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다.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운다는 건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지금의 내가 그런 일을 감당한다고?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엄마는 늘 자신의 서른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스물아홉 즈음엔 아빠랑 결혼 준비하고, 그다음엔 너를 가질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의 서른과 내 서른이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엄마의 서른은 무언가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시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지금의 서른은 여전히 어딘가 갈팡질팡하고, 하나도 정돈되지 않은 채 하루를 살아내는 기분이 더 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엄마도 그 나이에 지금의 나처럼 불안하고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어른처럼 보이지만, 엄마 역시 처음 맞는 서른이었을 테니까. 내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모순, 그리고 불안 역시 엄마가 겪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때의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내가 정말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른이라는 숫자에 대해 조금은 담담해지기로 한다. 서른이 되었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않다. 달력 한 장 넘어간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 극적으로 변할 리도 없다. 서른이라는 숫자는 어쩌면 내가 살아온 날들의 연장선일 뿐이고, 그 자체로 특별한 무게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지나가는 또 하나의 시간이자, 조금 더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살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엄마의 서른과 내 서른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시대도, 환경도, 그리고 나라는 사람도 다르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겪고 있는 서른이라는 나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할 것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서른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나는 서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특별히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서른, 그리고 엄마의 서른과 닮아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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