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
등산은 나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경험이 되었다. 처음 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산은 그저 높고 멀기만 한 존재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수록, 가파른 경사와 무거워지는 다리가 나를 시험하듯 따라붙지만, 묘하게도 그 힘듦 속에서 나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게 된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숨이 차오를 때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면 나를 둘러싼 풍경들이 조용히 나를 반긴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의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산은 나를 채근하지도, 나무라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의 존재를 가만히 품어준다.
이런 순간들 덕분에 나는 힘들어도 멈추지 않는다. 산을 오르는 동안은 오로지 나의 발걸음과 숨소리만이 귓가를 채우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생각들이 어느새 하나둘 씻겨 내려간다. 산이 주는 그 고요함과 단순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오르다 잠시 쉬어갈 때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더 넓어지고, 내가 걸어온 길이 눈에 들어올 때면 그 자체로 작지만 뿌듯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등산의 진짜 묘미는 무엇보다도 정상에서의 순간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길을 버텨내고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그곳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그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다. 멀리까지 탁 트인 하늘과 발아래 펼쳐진 세상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맞아준다. 오직 나의 발걸음과 땀으로 올라온 자리이기에, 그 순간의 감동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풍경 속에 나를 녹여버리고 싶어 진다.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단순히 ‘올랐다’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함께하는 성취감이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쉴 곳을 찾아 하늘만 올려다보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걸 견디며 올라왔기에 정상에서의 땀방울은 더 빛난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어쩌면 내 삶의 축소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힘든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결국엔 나만의 정상에 도달하게 되고, 그곳에서 얻는 성취감은 아무리 작아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정상을 내려갈 때의 발걸음은 올라갈 때와는 또 다르다. 이미 목표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나를 가볍게 하고, 그 여운은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나를 감싼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도 잠시, 산이 내게 준 그 성취감과 풍경의 여운이 마음 한편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위로해 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산에 오르게 된다. 똑같이 힘들고 땀이 흐를 것을 알면서도, 나만의 발걸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또다시 그 정상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산이 나에게 준 이 경험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래서 산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정상에 설 때의 벅찬 순간이 나를 다시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