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머리 끝까지 나지도, 눈물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들은 말을 곱씹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운이 나빴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 됐다. 며칠 전 내가 사는 지역의 '여성 새로일하기센터(이하 새일센터)'에서 걸려온 취업 알선 연락을 수락한 내 잘못은 필시 아니었을 테니까. 그저 운이 나빴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왔다. 회의가 한창인 시각, 남편에게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점심시간까지 남은 한 시간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결국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엄마에게 전화 걸기. 지금 이 상황에서 어쩌면 가장 최악의 선택지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면서도 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내가 겪은 일을 단숨에 털어놓으며 나는 조금이나마 후련했던가. 아니,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던 것도 같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나는 아침에 있었던 면접에서 내가 들은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말했다.
"마음 비우자. 그런 곳, 안 가면 되지."
필시 나를 위로하려고 꺼냈을 그 말에 내 안에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간신히 유지해오던 평정에 작은 균열이 생기자 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대던 마음이 끝내 무너져 내렸다.
"엄마, 내가 뭐 대단한 걸 바라는 거야? 그냥 남들처럼 일하면서 그렇게 살겠다는 건데,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마음을 비워? 왜 내가 면접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해?"
결국 울고 말았다. 일찍 결혼해 타지에 사는 딸이 언제나 걱정인 엄마를 알면서, 결국 전화를 걸어 기어이 울고 말았다.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내가 완전 이방인인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말이 통하면 뭐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않은 채 띄엄띄엄 숨을 몰아쉬며, 내 안의 내가 그렇게 말했다.
차라리 그 면접에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적어도 이렇게 무력한 기분으로 눈물을 쏟으며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을 텐데.
운이 나빴다. 그러나 단지 운이 나빴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어떤 기분이 자꾸만 치밀었다. 자괴감 같기도 분노 같기도 한 그 기분이 나를 갉아먹었다.
사는 게 나아질까. 포기를 하면 편해질까. 나는 내가 자꾸 틀린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단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먹자는 남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일 년 정도 복용하던 우울증 약을 끊은 지 세 달쯤. 어쩌면 약발이 떨어져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 차를 타고 병원으로 나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풍경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