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사각지대의 돌에 타이어가 찍혀 긴급출동 서비스로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했다. 정신이 쏙 빠졌다. 스페어타이어로는 임시 주행만 가능해서 빠른 시일 내에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사는 게 나아질까요, 아무래도 희망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겪은 구체적인 일들에 대해 말하는 대신 그런 말들을 늘어놓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그전에 먹던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인생을 높은 건물이라고 생각해보세요. 1층이 한 살, 10층이 열 살이라고 생각해보면 문뜰씨는 지금 28층에 있는 거죠. 저는 문뜰씨 보다 높은 층에 있을 거고요. 이 위에서 아래를 보면 어떤 층에는 불이 꺼져있기도 하고 또 어떤 층은 밝게 빛나기도 해요. 나도 그렇고, 문뜰씨도요. 다 어둡거나 다 밝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말에 눈물이 흘렀다.
"내려다보면 한 층이 꺼져있다고 해서 다음 층도 꺼져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불을 켜기는 쉽지 않겠지만, 지금 어둡다고 해서 나중에도 어둡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껏 그래 왔듯이요."
의사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대신 담담하게 상황을 관조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그 비유대로라면 지금 내 상황은 누군가 실수든, 고의든 간에 내가 있는 방의 전등을 깨고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내게 어떤 이는 그 사람이 고의로 전등을 깬 것은 아닐 테니 넘어가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그냥 재수가 없었으려니 하고 촛불이라도 꺼내 켜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둠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도, 꺼져버린 형광등 불빛을 희미한 촛불로 대신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럼 뭘 어쩌고 싶은 건데?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눈물이 멎을 때쯤 깨달았다.
나는 면접관에게 왜 전등을 깼느냐고, 내 세상을 다시 밝혀놓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 단지 일자리를 구하러 간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대한 기대를 잃어야 했는지, 2019년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당신이 맞고 내가 틀린 것인지, 그걸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