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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이 언니 Mar 16. 2020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삶, 사람


#.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딸아이를 재워준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남편에게 참 고맙다.

툭하면 심통을 내고
맘 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는 나를 9년째 보면서도
'너 참 유치하다.' 하는
생채기 주는
말 한번 안 하는 남편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내게 늘
한결같이 따뜻하다.

겉으로 보이는 뾰족한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를 먼저 바라봐주는
사람이라 오늘도 고맙다.


#.
재택근무지만 아이를 온전히 혼자 볼 수 없어
손녀를 봐주시러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해주시는 친정부모님께도
오늘 하루도 참 감사했다.

다이어트할 거라고 다짐하고
저녁도 제대로 안 먹고
딸아이와 놀아주다
힘이 없어서
오후에 엄마가 해두고 가신
누룽지와 미나리 오징어무침을 먹는데
얼마나 꿀맛이던지,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모른다.

따뜻하고 맛있는 집밥만큼 힘을 많이 주는 건 없구나, 집 하면 왜 밥이 생각나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사돈집 마스크까지 걱정하는
극성 친정 엄마가 계셔서
이 난리 중에도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마음 깊이 늘 빚을 진다.


#.
내일은 남편의 생일날.
오늘도 내일 생일상에 필요한 음식 재료들은
쿠팡에서 구매했다.

얼마나 많이 또 구매했는지,
쿠팡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친정 엄마께서 쿠팡맨이 과로사했다는
기사를 보셨다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신다.

놀란마음에 찾아보니,
정말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 많은 빌라에서
바쁘게 새벽 배송하다가...
그만 쓰러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코로나로 인해 마트에 가기 무서운 요즘,
아니 지금 이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도
전날 시키면 다음날 배송되는
로켓배송을 얼마나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쿠팡에서 일을 하며
로켓배송과 쿠팡맨의 탄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1인으로써
이번 일이 남일 같지 않다.

무척 마음이 아팠다...

나의 편하고 즐거운 쇼핑을 위해
누군가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가..
나는 그분들께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

겸허해지는 오늘.
마음 한켠이 저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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