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결이 언니 Feb 14. 2020

나는 오늘도 남편을 혼자 재운다

어쩌면 이기적인


결혼 5년 차.

여섯 살 딸아이는 감기로 친정 부모님 댁에 가고, 모처럼 남편과의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무언가를 같이 하기보다는

꼭 같이 하지 않아도

한 공간에서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하며

그저 쉬 본다.


오늘은 기다라한 패브릭 소파에 둘이 누워

나는 방콕 전문 여행 책을 읽고,

남편은 아이패드로 게임을 했다.


게임은 배틀그라운드라는 총 게임.

슝 슝 ㅡ 게임 속의

총 쏘는 소리와

방콕의 볼거리나 먹을거리를

소리 내어 읽는 내 목소리가 섞다.


그러다 문득 남편은

요즘 즐기는 이 게임에는 대화 기능이 있어서

게이머들이 육성 대화를 나눈다며

대화를 들려준다.


변성기가 되지 않은 초등학생

아이들의 목소리.

서로 인사도 나누고

작전도 짜는 것 같다.

신기하고 재밌다.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

"아~진쫘~ 긴장 좀 허자?!"


딴짓하느라 분발하지 못한 우리 남편이

한소리 들은 것이다.

하하하


같은 팀 초등학생 멤버에게

따끔하게 혼난 서른다섯 살짜리  남자는

그 후로 눈에 불을 켜고 게임을 하더니

마지막에는 결국

"역쉬~ 잘해쒀~!!"라는 칭찬을 들었다.


남편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참 모르는 요즘.

게임하다가 따끔하게 혼도 나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아서 반가웠고 ㅡ

너무 웃기다며,

함께 웃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려하는 남편을 나는 스윽 홀로

침대로 보내버린다.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누워버린 그대로가

참 편하기도 했고,

잘 때라도 온전히 혼자 쉬고 싶다는

바람도 있고,

치명적으로는 코 고는 남편의 옆에서는

신혼 때부터 깊게 잠들지 못했던

내 예민함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꼭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TV를 보거나 ㅡ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탱크가 충전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집을 비운 늘 같은 날도,

홀로 게 하는 것이

적잖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잠시라도 혼자 쉬는 간이 필요한 사람이니

양해를 구하는 방법밖에는 없 않은가.


누가 들으면

"그래서 혼자서 뭐 대단한걸 한다고

남편을 외롭게 해?"

할 수도 있는데...


그냥 혼자 멍하니 천장 구석을 응시하거나

오늘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거나, 하는

비생산적인 일을 하곤 한다.

비생산적이지만

이 충전의 시간이 없다면

종국에는 내 에너지가 모두 고갈될 테니

내 삶에서는 없어져서는 안 될 순간이다.


(그리고 그걸로 외로웠으면

진즉에 나랑은 못 살 남편이었다.)


오늘은 ㅡ

머리맡에 읽던 책을 놓고

거실 매트에 한쪽 귀를 대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아랫집의 TV 소리인지, 사람 소리 인지 모르는

웅성거리는 얕은 소음이 들려왔다.

웅ㅡ웅.

그저 저 아래에도 누군가가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다고 몰래 듣고 싶고 그런 건  아니랍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거실에서 자야지, 하고는

이불과 베개를 챙겨 나와서는

편하게 퍼져서는 또깍또깍

어설픈 글을 써본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남편은 오늘도 누운 지 5분 만에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고 있으니

더욱 행복해지는 혼자만의 잉여시간이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늘 같이 있을 수만은 없다.

많은 시간을 서로에게 맞추어주되

나만의 독립된 공간과 시간을 갖는 것도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오래 잘 살기 위해서

앞으로도 종종 혼자 잠들 생각이다.


어쩌면 이기적인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책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