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틈새로 바람이 스치고,
커튼이 느리게 흔들린다.
이 방에서 움직이는 건 그것뿐이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아무것도 없는 통장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숫자 ‘0’이 액정 위에서 반짝인다.
마치 나를 조용히 비웃는 표정 같다.
책상 위엔 마시다 남은 물컵,
구겨진 메모지, 쓰다 만 편지가 있다.
말들은 종이에 적히지 못하고,
내 안에서만 부풀다 가라앉는다.
문밖에서는 가끔 사람 목소리가 스치지만,
그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다.
어느 날, 마주한 눈빛이 있었다.
그 안에는 오래 참아온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말도, 울음도, 한숨도 아니었지만
내 안 어딘가를 무겁게 눌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받은 상처와
내가 남긴 상처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깨달음이 나를 구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무너진 마음 한쪽에
아주 작은 기둥이 세워졌다.
그 기둥은 나를 바깥으로 이끌지 못하지만,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게 한다.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통장은 아직도 0이다.
나는 여전히 혼자다.
그리고, 내 마음도 아직 0이다.
하지만 언젠가, 아주 조금이라도
채워보려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