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서 주은 돌

부처님 오신 날 내게 온 법비

by 수연

숲은 나의 허브

숨길로 채워져 있다

숲에서 보고 경탄한 모든 초록이 다 내가 칠한 색조임을 알겠다

나는 지금 내 작품 속에 들어와 있다

새록 새록 새로워지는 색채 속에

멈춰 서고 거닐며 숨 쉰다

하, 녹음과 연둣빛 찬란한 그늘 아래서


쫙 펼친 잎사귀의 빗살무늬 곱게 빗어내린 듯

들여다보면 볼수록 골목이 느는 초록의 세상


내가 매양 찾는 길은 숨길

곁에서도 안에서도 아득한

그 길 한가운데로

얼굴 없는 나그네

얼굴들을 앞서 보내고 섰다


한 우주가 지나가는 뒤에서

홀로, 고즈넉이

비추며



지난 계절의 시다.

초록은 여전히 무성하지만, 그 사이 아카시아가 피어 밤에 더 꿈같은 단내를 퍼뜨렸고, 낮에는 장미 향이 짙었다. 보도블럭 가장자리, 중학교 담장을 이룬 나지막한 초록의 철망 사이로 붉은 장미가 기세 좋게 고개를 내밀었다. 겹겹이 펼친 꽃잎이 사자 갈기처럼 중심을 에워쌌다. 어린 왕자의 장미가 떠올랐다. 가시 네 개를 보이며, 발톱이라고, 호랑이가 덤벼들어도 겁날 게 없다던 오만하고 새침한 그 말이 약간 무거워 보이는 꽃잎 주위로 맴돌았다.

길을 걷다 꽃만 보면 걸음을 멈춰 세웠다. 새로 피어난 꽃에 오롯이 마음을 포개어 찍지 않고선, 발길을 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내 앞의 이정표는 하나가 아니고,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엇갈려 있었다. 원래 하나로 이어졌다, 아니 이어나가겠다 다짐했던 길이었다. 그런데 걸을수록 경계를 세우며 담을 쌓게 되었다. 더 큰 폭을 차지하기 시작한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 구실하며 살기 위해 필요하다 여겼던 직업의 길로, 특히 5월 5일과 5월 8일이 기준이 된 선택이었다. 이 길로 들어설 때 나는 무엇보다 네 살배기 조카와 부모님, 열심히 사는 동생 내외, 그리고 어울려 사는 이웃들 보기에 남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또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대체로 나 자신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떠밀려 매달리듯이 나아간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만난 아이들과 책, 같이 읽고 대화하며 써나가는 시간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또 그것으로 모든 고통과 피로감이 상쇄되지도 않았다.

반면 전자의 길은 달포 전만 해도 그쪽으로 길이 나리라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이었다. 그 길은 산으로 향해 있었다. 지상의 인연을 뒤로 하고 홀로 올라야 하는 외길이었다. 서늘하고 높은, 그만큼 고독하고 자유로운 길이었다. 단 한 번도 발 디딘 적 없는 그 외길에 대한 갈망이 사무쳤다. 하지만 여전히 수북한 내 머리털은 무겁게 늘어져 지상을 향하고 있다. 웬 미련이 이리 많은지. 죽은 세포들로 이루어진 머리털조차 잘라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혹, 한꺼번에 쳐낼 날을 노리고 있는가.

양 갈래로 나뉘는 이 길들은 서로 있는 대로 날을 세우며 부딪치다 내가 기어이 쓰기 시작하는 순간 Y자로 갈마든다. 그래, 세 번째 길이 있다. 그것은 마음의 방향을 밖에서 안으로 모아들이는 길이다. 바로 내면을 적어나가는 고요하면서도 용맹스런 길이다. 한 줄기 바람에 시들고 다시 피길 되풀이하는 한 떨기 붉음이 가시 발톱을 거둬들이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길. 애처롭고 측은하며 미소가 되살아나는 길. 나는 틈틈이 이 길로 온다.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이고픈 어리석음과 죄책, 모든 부질없음과 허무, 그리고 동경과 갈등의 골을 들여다보며 어느 하나 배제하거나 뿌리치지 않고 고즈넉이 불러내는 길.

어제, 부처님 오신 날에는 비가 왔다. 늦은 오후 두어 시간 참선을 하고 나와 너른 절 마당으로 향한 운치 있는 포석 길을 걸을 때였다. 대여섯 발짝 맞은편으로 흰 고무신에 승복 바지가 보여 우산을 쳐들어 올렸다. 주지 스님이 서 계셨다. 나는 우산 기둥을 붙잡은 채 약간 커다래진 눈으로 합장도 제대로 못하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주지 스님은 우두커니 그대로 서 계셨다. 나는 머쓱하여 다시 한 번 인사드리고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필 비가 와서...." 주지 스님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담담하면서도 힘찬 음성으로 내지르시고, 연신 바지 춤을 추어올리더니 신고 계시던 흰 고무신을 첨벙, 바로 앞에 고인 흙탕물에 빠뜨리셨다. 그러고는 두 발을 자분자분 자못 경쾌한 속도로 굴리곤 도로 끄집어내셨다. 고무신은 말갛게 씻겨 모래 한 알 붙어 있지 않았다. 주지 스님은 사뿐히 고무신을 돌려 나아가셨다. 연꽃 같은 걸음이었다. 세상 속에서 세상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나아가는 법을 내 눈앞에 똑똑히 보이시고는 시원스레 걷고 계셨다. 부처님 오신 날, 내게 온 법비였다. 내 번민과 고뇌를 아신 부처님의 은유이자 설법으로 다가온 몸짓이었다.

실은 내가 흙탕물이라고 나중에 이름 붙인 것은 진흙이 가라앉아 위에 층이 맑은 물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유명한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보인다. 나는 어쩌면 내 앞에 놓인 길을,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현상들, 그리고 관계를 충분히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웅덩이진 빗물의 황톳빛에만 초점을 맞춰 흙탕물이라고 내처 말해버리듯,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으로 보고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통찰이 뒤통수를 친다.


길에 연연해 길이 자꾸 갈라진다. 길이 아니라 어떻게 걷느냐가 중요하다. 좀 더 깊이 바라보고 호흡하며 내 전체로 걸어야겠다.


월륜행. 내 법명이 쨍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이름 따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며 달 바퀴 굴리듯 사뿐히 나아가는 삶을 그려본다. 그 길이 어디든, 고개를 빠뜨린 생각들로부터 우선 머리를 쳐들자. 생각이 아닌 세상을, 나아가 세상을 비춰보는 마음의 달을 마주보자. 발을 오롯이 땅에 놓았다 떼며 자분자분 걷자. 땅은 단 한 번도 내 발길을 붙들거나 떠밀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거나 멈춰 서거나 끝까지 걸어가거나 길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그 길 역시 숲처럼 숨길로 채워져 있었다. 곳곳에 피어나는 꽃들과 아직 발견된 적 없는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 숨 한번 크게 내쉬고 들이쉬고, 사뿐히 내 세상과 마주 닿자. 비록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그 산이 그립긴 하여도. 내 곁에는 숱한 초록이 있다. 빗물에 더 생생해진 이 길을 청신히 걸으며 가을 봉정암 순례길로 접어들자.


이전 06화나 없는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