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버린 조약돌

뗏목도 버리고 가야 하거늘

by 수연

나의 주중은 일터를 내 방 안으로 끌어들여 방 안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주로 노트북이 있는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사회. 와이파이만으론 불안해, 랜선까지 꽂았는데, 번번이 유선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 진단 결과 ip 구성이 올바르지 않단다. 인터넷을 검색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그대로 따라해보았는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통신사에 문의를 하고 기술자님의 방문 접수를 신쳥했다. 그러느라 시간이 제법 소요된 점이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사실 공유기를 아버지 서재에서 내 방으로 옮겨 무선이어도 네트워크 상태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굳이 통신 장애에 대비한답시고 유선 인터넷까지 되게 하려다 없던 문제만 덤으로 얻었다. 무선만으로도 괜찮은 지금, 도대체 왜, 무선으로는 안 괜찮을 내일을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 걱정과는 달리 선 없이도 인터넷은 잘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


매사 이런 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상은 되지만 당장 일어나지는 않은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 애쓰다 소중한 현재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날도 좋은 이 봄날 왜 내가 방 안에서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전전긍긍하며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가. 억울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누구도 나더러 이렇게 시간을 보내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아니,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강요를 할 권리는 없다. 설령 무언의 강요나 압박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요이고 압박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 더욱이 자기 시간을 자기가 쓰는 것과 관련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권리를 나 아닌 다른 사람 혹은 집단이 통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사회이고, 나는 민주시민이다. 따라서 헌법에 의하여 날 때부터 기본권,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나아가 개별적인 기본권에 해당하는 자유권, 신체와 정신의 자유 또한 보장받는다.


내 몸과 마음을 부릴 권리는 분명 법적으로도 나에게 있다. 모든 개인이 그러하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순간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까. 심지어 내 방 안에서도 말이다.


책상과 맞은편 책장 사이엔 네모난 좌복이 깔려 있다. 여차하면 철퍼덕 내려앉아 반가부좌 틀고 좌선에 들려, 부러 가져다놓았다. 앉고 보니, 좌복이 마치 뗏목 같다. 뗏목처럼 나를 싣고 투명한 물결 너머로 거슬러올라가고 있는 듯 보인다. 문득,


'하물며 뗏목도 버리고 가야 하거늘'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생각의 출처는 금강경이다. 금강경에 보면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처럼 알라. 옳은 법도 오히려 반드시 버려야 하거늘' 이란 구절이 나온다. 내가 부처님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고통을 건너가기 위해 의지했던 가르침을 고통에서 건너간 이후까지 붙잡고 있지 말라는 의미다. 즉, 무엇에도, 그것이 비록 더없이 훌륭한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방편으로 활용할 뿐, 스스로 얽매이지 말라는 당부인 것이다. 부처님의 당부는 또 이렇게도 들린다.

너는 본래 자유롭다.

비로소 안심이 된다.

헌법으로 보장받는 자유로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헌법의 자유권이 자신을 타인이 가할 위해로부터 지키는 수단이라면, 부처님이 보장하신 자유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뗏목이다.


그 뗏목도 버리라 말씀하신 것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혹은 자유로워졌다는 생각, 모두 생각이다.

생각에 나를 묶어두는 어리석음을 이제 멈춘다.

시간을 쓸데없이 흘려보냈다는 죄책감과 불안도 놓아버린다.

그렇다 해도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데?

하면, 흘러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그 생각도 놔버리련다.

그렇게 계속 놔버리련다.

놔버릴수록 생생히 살아나는 것이 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보다 가까운

이것이 나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그대로 둬도 잘 돌아가는 노트북에 굳이 랜선을 꽂는 이유는 인터넷 연결의 안정을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좌복까지 끌어다 놓고 내가 '나는 누구인가' 묻는 이유는 일희일비하는 나와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나 사이의 불안정한 연결 상태를 안정으로 다시 돌이키기 위함이다.


알 수 없는 통신 상의 오류로 랜선이 꽂힌 컴퓨터의 주소는 지금 불확실하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망각으로 내가 던지는 화두를 듣는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역력히 살아있다.

소리가 끊긴 이후에도 여전히 듣고 있다.


도대체 이 나는 누구인가.

뗏목 같은 화두가 녹아 사라진 자리에 고드름이 맺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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