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이 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온라인 상으로 신입교육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자격증을 따고, 강의를 듣는 일정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건조하고, 내가 깎여나가는 것 같은 말 없는 시간들이다. 오늘은 비의 영향으로 인터넷 연결마저 불안정했다. 온라인 교육 와중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공유기가 있는 아버지 서재로 후다닥 건너갔다. 인터넷을 무선에서 유선으로 바꿔야겠다. 화상 강의를 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니까. 요즘 나의 사회 생활은 선을 연결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은 편리하기도, 그만큼 허탈하기도 하다.
오늘은 비가 그쳤다.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었다. 내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시를 읽고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는 거였다. 나는 피드백 중심의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다. 그 과정이 뜻밖에 재밌어서 놀랍고 유쾌했지만 첫 시강을 앞두고 있던 터라 다소 긴장되고 들뜬 기분이 동반되었다. 선배 강사와는 오후 세 시, 화상 강의실에서 만났다. 선배 강사가 학생 역할을 대신 해주며, 진행을 도왔다. 강의는 즐거웠다. 선배는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강사의 전문성에 대해선 생각보다 후한 평가를, 전달력에 있어서는 정확한 피드백을 전해주었다. 나는 단점을 보완해 아이들에게 좀 더 쉽고 친숙하게 와 닿을 수 있는 표현들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본 강의에서는 다소 진행 속도가 더디더라도 아이들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실제 아이들을 만나 작품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오늘보다 차근차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뜻밖에 날이 좋았다.
국어 강사 경력 15년차 선배로부터 화상으로 30분간 문법 교수법을 배웠다. 역시 베테랑답게 핵심을 잡아 명쾌하게 개념 설명을 해낸 강의였다. 나는 여태 독서 논술 부문만 맡아 강의해왔지만, 국어에 대해서도 상당한 흥미와 열의가 솟아나는 걸 느꼈다. 때마침 주문해 둔 랜선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반갑게 현관문을 열고 분홍빛 비닐에 포장된 상자를 들고 와 개봉했다. 둘둘 감긴 줄을 풀어 아버지 책상 밑 공유기에 먼저 꽂고 내 방으로 건너와 노트북 가장자리를 살폈다. 그런데 웬걸, 랜선을 꽂는 포트가 없었다. 그 사실을 지금 알아차리다니……. 미간이 순식간에 조여들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좋다가 잔뜩 찌푸린 날로 뒤바뀌어버렸다.
이렇듯 일희일비하는 나의 오늘은, 일을 위주로 돌아가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새로 오는 오늘이며, 다른 이들의 오늘과 마찬가지로 비가 오거나 그치고, 날이 좋거나 흐린 날들이 교차한다. 이런 각각의 오늘은 물론 외부의 날씨보다는 내 기분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날씨와 기분이 어떻게 달라지든, 그대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나는 이 관점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더 나아가 자각하기 위하여 매일의 오늘을 특별한 방식으로 마감한다. 바로 잠들기 전 15분마다 좌복을 깔고 앉아 '나는 누구인가' 소리 내어 말하고 좌선에 드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새롭고도 새로운 오늘이 찾아온다. 이날 나는 컴퓨터를 벗어나 강의를 직접 들으러 간다. 내가 불교기본교육을 받고 템플 스테이를 체험한 사찰이다. 나는 그곳 선방에서 어른 스님께 참선을 배우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말은 참선 입문자들 모두에게 부여된 첫 번째 화두였다. 4회차 무렵, 스님은 화두와 관련한 사유를 이어가는 구심점이 되는 주제를 선사하셨다. 그 주제란, '나이를 먹어 머리는 희어지지만, 마음은 희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마음은 늙지 않다는 것. 익히 들어보기도, 드문드문 경험하기도 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어떻게 '나는 누구인가'에 이르는 사유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
5회차 토요일, 사중행사로 바쁘신 어른 스님을 대신해 젊은 신도 부국장 스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었다. 그때 우리에게 오늘의 화두로 삼을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바로 신라시대 위대한 선사이자 파계승이었던 원효대사와 설총 간에 오간 선문답이다. 설총은 파계를 했을 당시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자 이두를 만든 대학자다. 이두는 훈민정음,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가 창제되기 전까지 사용되던 우리말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지은 문자다. 이 큰 인물을 낳고 원효는 다시 속세를 떠난다. 장성한 설총은 아버지가 원효대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가 기거하던 산사를 찾아간다. 가을이 무르익어 절 마당엔 낙엽이 가득하다. 처음 뵙는 아버지는 말없이 낙엽을 빗자루로 쓸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설총은 다음 날 일찌감치 방을 나와 마당의 낙엽을 깨끗이 비로 쓴다. 이때 원효대사가 다가와 한 귀퉁이에 모여 쌓인 낙엽을 한 움큼 주워 들더니 마당에 연거푸 뿌린다. 설총이 아연하여 왜 다 쓸어낸 마당에 다시 낙엽을 흩느냐 물으니 원효대사 말하기를, '아직 멀었구나' 하였다. 설총은 순간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가 화두로 잡은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원효대사가 다 쓸어낸 마당에 낙엽을 흩고 아직 멀었다 한 뜻이 무엇인가. 20분, 15분 번갈아 좌선이 이어졌다. 나는 처음에 설총이 낙엽을 쓰는 데 집착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그 대답이 너무 단순하게 여겨져 더 생각을 이어갔다. 스님은 답이 떠오른 분이 있는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분들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한 사람씩 나와 이야기할 시간을 주셨다. 나는 처음엔 손을 들지 않았지만, 스님이 두 번째로 또 이야기할 분이 계시냐고 기회를 주셨을 땐 참지 못하고 번쩍 손을 들었다. 내 앞에 두 사람이 있었다. 차례로 스님 오른쪽 귓가에 대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알아들은 단어는 '치우고', 하나밖에 없었다. 스님은 연달아 '들어가십시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목소리의 높낮이와 그 어조를 달리하여, 또 설명을 짤막히 덧붙이며 답에 멀고 근접한 정도를 나타내셨다. 비로소 내 차례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스님 귓가에 대고 속닥거렸다. 내가 풀어낸 바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설총에게 아직 멀었다고 한 이유는 이랬다. 낙엽 자체가 나쁘고 더럽고, 쓸어내야 할 대상은 아닌데, 설총이 공연히 그것을 쓸어내야 깨끗해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쓸어내야 할 것은 그 생각이 아니겠느냐.
스님은 '들어가십시오', 쩌렁쩌렁하게도 외치셨다. 그리고 한 말씀 덧붙이셨다. "스님도 같이 쓸고 계셨잖아요!" 나는 아차 싶었다. 내 생각에만 골몰하다 이야기를 충분히 주의 깊게 듣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몇 자락 놓친 부분이 있었다.
스님은 이 화두와 관련하여 말씀을 아끼셨다. 다만, '할 뿐이다', 라는 말을 또렷하게 전하시며, 이 한마디로 대표되는 묵조선의 수행법 '지관타좌'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다. 그리고 화두의 답은 이와 같이 단순하게 표현된다고 밝히셨다.
즉, 설총은 낙엽을 쓸되, 그냥 쓸었어야 했다. 여기서 핵심은 '그냥'이다.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그냥 쓴다는 것은 쓴다는 생각 없이 쓰는 것이다. 오로지 쓰는 행위 자체로의 집중. 그것이 순수하게, 참되게 쓰는 것이라는 의미다.
사실 이와 같은 설명은 라면 끓이는 법을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직접 라면을 끓여 먹어야, 그래서 그 맛이 생생히 체험되어야 라면에 대한 의심이 풀려 시원해질 것 아닌가.
화두는 하나의 의심 덩어리라 했다. 이를 '의정'이라는 한자어로 표현하는데, 의정이 크고 단단해질수록 화두가 무르익은 것이다. 화두가 더할 나위 없이 무르익은 상태의 내가 길을 걷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때 문득 들려온 까마귀 소리에, 혹은 푸드덕 날아올라 머리 위로 활강하는 비둘기를 보다, 화두는 예기치 않게 박살날 수 있다. 어떤 인연이 닿아 내 첫 화두가 초전박살 날는지.
스님께서는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데, 꾸준히 와 인천이나 대전쯤 이르렀을 때, 스승은 도로 부산으로 내려보낸다고 말이다. 이렇게 되풀이해 부산으로 내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분명 처음이나 먼젓번과는 다르다. 스님은 여기서 '꾸준히'를 강조하셨다. 이 길을 꾸준히 걷는 와중 확 깨나는 순간을 맞는단다. 그리하여 당나라에 유학하러 가던 도중 해골물을 마시고 귀향한 원효대사처럼 더는 당나라나 서울이라는 목적지가 필요치 않는 때가 오는 것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 어디에 있어도 당당한 주인 노릇하는 때가 나는 그립다.
선방을 나와 잠시 사리탑 뒤편에서 향 공양을 하고 섰다. 물끄러미 구불구불 머리 풀며 치솟다 공기 중에 녹아드는 향연을 맡으며 염원을 보내는데, 익숙한 모습의 비구니 스님이 걸어갔다. 지난 겨울 강의을 들었던 적이 있는 스님이셨다. 쾌활하고 유머 가득한 입담으로 행자 시절 일화를 들려주어 우리들을 웃게 했던 기억이 선연했다. 비구니 스님은 여전히 활기차고 씩씩하며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대장부 같았다. 파르라니 깎은 뒤통수를 훤히 드러낸 채 엷은 먹빛 저고리와 바지 차림으로 활보하며 경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다 수령이 오래되고 둥치가 몇 사람을 한데 모은 정도로 굵은 나무 근처에 멈추어 자못 호기로운 동작으로 한 팔을 쭉 내뻗었다.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스님은 화면을 마주보며 당당한 포즈로 자기 모습을 찍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그때 이 말이 절로 떠올랐다. 내가 지금 갖추지 못한 태도, 이것이 아쉽고 저것을 버리지 못해, 아직 꼬깃꼬깃 접어 감춰둔 그 마음. 머리가 무겁다. 생각으로 무겁고, 실제 자라난 머리털 무게 때문에 무겁다. 확, 쳐내고 싶은 충동이 발작처럼 차오른다.
일전에 나는 조약돌이 스스로에 대한 은유라고 고백했었다. 사는 동안 이미 조약돌은 숱하게 깎이고 깎여 이 지경으로 부서졌음에도 아직 덜 깎였군, 몇 번이고 절감하는 순간이 온다. 오늘도 그러했다. 그런밤의 끄트머리, 좌선을 마치고 이부자리에 누워 비몽사몽 잠이 들려는데, 내면에서 나직하지만 또렷이 소리가 들렸다. '원석 같아.'
오늘 아침, 나는 내가 비록 조약돌이긴 해도, 이때껏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다시 바위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실감에 찬 돌멩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 알았다. 며칠 전 오늘 귀로에 올려다 본 저녁 하늘엔 조각달이 떠있었다. 위쪽이 둥근 하현이었다. 점점 깎여나가는 것으로 보이던 달은 어느새 상현에서 보름달로, 다시 하현으로 조각나 세상을 은은히 비추고 있다. 지상에 박힌 나라는 조각도 그저 깎이기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인 듯 이따금 들이쉬고 내뱉은 숨결이 밝다. 그 숨 한 모금이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