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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May 26. 2017

그녀들에게 빠져들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이화경 / 행성B잎새

2달 정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천천히 읽어내려간 책인데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멋있어서 오랜만에 두근거리며 읽어내려간 책이다. 수전손택부터 제인오스틴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끼쳤던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작년 말부터 여성작가들의 작품과 삶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2017년 달력을 선택할 때도 그녀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있는 달력을 선택했고,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선택할 때도 버지니아 울프와 프랑수아즈 사강, 라우라 에스키벨의 책을 선택하곤 했다. 이런 그녀들에 대한 나의 관심사에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많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다 읽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일일이 그녀들의 인생을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찾아가는 것도 막연했던 나에게 그녀들의 삶과 작품을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라니. 거기다 그녀들의 문장과 이 책의 저자인 이화경 작가의 글은 또 얼마나 멋있는지. 읽는 내내 그녀들의 삶과 그녀들의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 수전 손택,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

인간이라면 목숨을 걸고 사유해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

그녀는 악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악한 일을 행한 인간이 '평범할 수'있다는 사실,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한다는 진실,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

붉은 장미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는 언제나 삶은 '여기'에 있다고 믿었으며, 그러기에 넘어지고 자빠진 지금 '여기'에서 벌떡 일어나 뛰고 춤추었다. 혁명의 붉은 장미꽃을 입에 물고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

여성의 성공에 대해 통찰하고 행동한 시몬 드 보부아르,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로.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움직이리라는 것을. 그러면 문은 천천히 열릴 것이며, 나는 그 문 뒤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위기의 여자> 중-

절망 속에서 새로움을 갈구한 <삼십 세>의 잉게보르크 바흐만,

불가능이 있어야 가능을 강렬하게 욕망하니까. 타락한 기존 언어에 대한 절망이 있어야 새로운 언어를 갈구하니까 그녀는 세상의 삼십 세를 향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삼십 세여,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삼십 세,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안의 착한 천사를 죽이고 여자라는 개인의 삶을 산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은 가부장제 권위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조롱하는 날카로움, 문학 시장을 독점하고 문학계를 전유하는 남성들의 허세를 야유하는 유쾌한 배짱, 무시무시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세상 안에서 독창적인 글쓰기를 하라고 여성을 격려하고 다독이는 따뜻함, 지적인 허세 없이 요점을 파고드는 능수능란함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사랑 앞에서 한치도 주저하지 않은 조르주 상드

사랑하세요, 그리고 쓰세요. 그것이 당신의 사명이에요. 
당신의 천재성의 빛줄기를 타고 신에게로 올라가세요
-<조르주 상드의 편지> 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

자신을 향해 박수를 치던 손바닥으로 순식간에 뺨을 후려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칭송받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영광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 자신의 속도, 자신의 개성에만 전력투구했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천재적인 재능과 비극적인 삶의 실비아 플라스,

나란 존재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들의 총합이리라. 
나는 내 존재를 극한까지 표현하고 싶다.
-실비아 플라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세상의 오만과 편견에 맞선 제인 오스틴,

천재적인 글쓰기 재능이 있었지만 여자였기에 비통한 삶을 견뎌야 했고, 똑똑하지만 가난했기에 더부살이의 처지를 묵묵히 감수해야 했던 제인 오스틴. 그녀는 스스로를 일컬어, 감히 여류 작가가 되려고 하는 가장 무지하고 무식한 여성이라고 말했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중-


이 책의 본문을 그대로 옮기고 싶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좋은 책이다. 
내 인생의 베스트셀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녀들의 사랑과 재능, 그리고 비극적인 삶들을 이 글에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그녀들의 이야기 중 한 구절씩은 꼭 담아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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