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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Jun 28. 201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민음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마 '아니요'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클래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브람스가 아니라 모차르트를 좋아하냐는 물음에도 '아니요'라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브람스를 듣고 싶어졌다. 수줍게 건네는 시몽의 편지에 '아니요'라는 대답을 할 순 없으니까.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서른아홉의 실내장식가인 폴에게는 오래된 연인 로제가 있다.  로제는 폴을 사랑하지만 구속되길 싫어하고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삶의 일부가 된 듯, 완전히 익숙해져버린 로제와의 관계 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은 오로지 폴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실내 장식 일을 하기 위해 방문한 반 덴 베시 부인의 집에서 그녀의 아들 시몽을 만난다. 스물다섯 살의 그는 수려한 외모에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폴은 첫 만남 후 열렬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시몽과 자신에게 끝없는 외로움을 안겨주는 로제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의 그에게서 자신에게는 이미 사라져버린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느끼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익숙함과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폴. 자신을 외로움 속에 남겨두고 떠나는 연인의 곁에서 그 고독이 원래 자신의 것인 듯 조용히 받아들이던 폴에게 스무 살의 열정처럼 다가온 시몽.


커튼이 쳐 있고 유행 지난 탁자가 놓여 있고 왼쪽에 작은 옷장이 있는 그 벽을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았고, 앞으로 십 년은 더 바라보리라.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운 상태로. 로제, 로제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에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늙어 가라는 선고를 내릴 권리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 자신조차도..


폴은 시몽을 통해 로제로부터 기인한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끝까지 시몽과 로제 사이에서 고민하고 흔들린다. 새로운 사랑을 위해 필요한 무엇인가가 폴에게는 이미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멀어져 가는 시몽에게 '이제 난 늙었어'라고 말하는 폴의 모습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실제로 브람스는 자신의 스승인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시몽의 사랑처럼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14살이나 많은 클라라를 평생 동안 열렬히 사랑한 브람스가 시몽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껴진다. 그런 브람스를 보는 클라라는 폴과 닮아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고전소설 같지 않게 너무나 푹 빠져서 읽었다. 그 어떤 현대 소설보다 매력적인 소설. 그래서 고전인지도 모르겠지만..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 이야기를 이끄는 세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에 읽는 사람마저 함께 매료되는 소설이다.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물음표가 아니라 점 세 개로 이루어진 말 줄임표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몽의 편지에서는 물음표였던 것이 이야기가 다 끝난 지금 말 줄임표로 끝나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미련일까, 후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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