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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Aug 08. 2017

여행과 같은 '쉼'이 되어주는 책, 아바나의 시민들

백민석 / 작가정신

나에게 여행은 일상에 지친 나를 달래는 휴식과 같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즐기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여행을 간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하는데 굳이 돈을 아끼는 편도 아니고 고생하며 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인도나 쿠바는 내가 가보고 싶은 여행지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곳을 여행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 곳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줄만한 뭔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붉은 표지가 매력적인 <아바나의 시민들>은 쉽게 접하지 못했던 쿠바의 수도 아바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매력은 모든 주어가 '나'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이다. 아바나에서의 추억을 돌이키는 것이 백민석 작가가 아니라 바로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라고 느껴진다는 것. 책을 읽으며 아바나의 골목과 아바나의 태양과 아바나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엔 뭐가 그리 급한지 책을 급하게 읽는 습관이 생겼다. 원래 나는 책을 읽을 때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책을 거의 마시다시피 읽어내려가는 것이 최근의 내 습관이다. 하지만 이 책의 첫 장을 열고 아바나의 연인들의 수줍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다음 페이지를 들추고 있던 오른손을 내려놓게 됐다.

느리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나의 리듬, 나의 운율, 나의 속도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이란 낯선 공간을 헤매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비로소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보면서, 실은 당신 자신을 보는 것이다.
당신의 실존에 끊임없이 그어지는, 그러면서도 금세 스러지곤 하는 주름을 보는 것이다. 상념, 행복했던 한때이든, 불행했던 한때이든, 또 미래의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불안까지 드리워진 상념에서 당신은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 말레콘에서 당신은 상념에, 당신 자신에 중독된다.
말레콘의 파도는 방파제를 때려 부숴버릴 만큼 힘이 세다. 그 힘은, 방파제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여행객의 마음까지도 부숴버린다. 그래서 아바나를 찾은 여행객은, 자신의 부서진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이곳을 찾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어느새 내가 아바나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숙소의 낡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보이는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고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길을 헤매는 진짜 여행자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엔 여행자만이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 얻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아바나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쁜 일상에 여행과 같은 '쉼'이 되어주는 책. 


당신의 영혼이란 변화를 싫어해 습관과 규범에 묶여 있고, 귀가 얇아 통념에 휘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디네이터의 말처럼 이런저런 영혼의 족쇄를 훌훌 벗어던질 수 있다면, 당신은 아바나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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