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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Jul 27. 2020

랜선연애를 넘어 랜선이모_ 대안 관계

사랑하고 싶을 때 부담없이 사랑하고 싶은 욕망의 실현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라는 소설책이 있다. 내가 얼마나 잘났고,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있으면 나 좀 좋아해 달라고 하는 조건부적 고백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온다. 그렇다. 좋아하는 행위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에 관계를 위한 노력이 또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이란 결국 희생이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우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동물로써 소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노동과 수많은 정보에 지친 현대인들은 관계를 위한 에너지를 빼앗긴 상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모든 관계를 차단하고 쉬고 싶어한다. 3포 세대를 지나 N포 세대를 맞이하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의 관계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인간은 외로움이란 감정을 가지고 애착의 상대와 소통의 대상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인간관계에 대한 구조적 변화가 생겨났다. 감정의 깊이를 논하기보다는, 서로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그때 필요에 의한 일회성 관계와 에너지를 많이 쏟을 필요 없는 반려식물의 등장이 그러하다.





대안 관계_적당히 친밀하게, 내가 원할 때에


대인 관계와는 대비되는 대안 관계는 말 그대로,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대신한 짧고 얇게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뜻한다. 현대인들의 여유의 부재와 더불어, 모바일 기술의 발전은 시공간의 제약을 없앴으며 이러한 관계 맺음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본질은 같다. 기술의 발전이 매개체를 바꾸었을 뿐.


우편기술은 펜팔 문화를 낳았고, 인터넷의 발전은 버디버디와 네이트온 같은 PC 메신저를 낳았다. 이제는 모바일의 발전으로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SNS와 모바일 메신저를 낳았다. 인간은 언제나 소통하고 싶어 하고, 공감을 얻고 싶어 한다. 우리의 본질은 같다. 기술의 발전이 그 욕망을 실천시킬 매개체를 바꾸고, 그 장벽을 낮춘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인터넷망, 즉 랜선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관계 맺음이 가능하다.





WELCOME TO DIGITAL WORLD


카카오톡의 오픈 채팅이나, SNS 속 친구 맺기 기능을 통해 우리는 팔로우하고 팔로잉한다. 쉽게 여러 가지의 새로운 관계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요즘 핫한 대안 관계는 다름 아닌 '랜선족'이다. 랜선 이모, 랜선 집사 등 현실과 다른 정체성을 온라인에서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아이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현실 속 어려움은 그것들과는 먼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대안 관계들 중에서도 특히 랜선족의 대두에는 티슈 인맥과 반려식물과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1대 1 관계가 아닌, 1대多 관계라는 점이다.





귀여운 아이의 이모를 자처하다_랜선 이모

 

TV와 SNS 속의 귀여운 아이를 좋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어떠한 책임감도, 돈도 필요하지 않다. 물론, 원한다면 선물을 보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래야 할 의무는 없다. 단지 맘껏 이뻐하고 힘껏 아이의 미소에 녹아내리면 될 뿐이다. 1대多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애착의 상대도 큰 부담감을 가지지도 않고, 나를 지명해서 찾지 않는다. 내가 피곤한 날에 랜선 조카를 보며 힘을 낼 수도 있지만, 보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담 없이 누군갈 좋아하고, 주접이라고 할 만큼 맘껏 마음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온라인 상에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핸드폰 좀 그만 보고 진짜 사람을 만나.

 

당신은 마법사가 될 수도 있고 농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모가 될 수도 있다. 온라인 상에서 말이다. 우리는 현실세계에서만 살아가고 있지 않다. 다양한 SNS와 온라인 게임이라는 혼합 세계에서도 살아가고 있다. 복수의 정체성을 가지고, 복수의 세계에서 거주 중이라는 뜻이다.


온라인 관계는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맥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온라인 상에서의 페르소나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거나 중독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을 뿐이다. 또한, 우리가 거기서 느끼는 감정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현실세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현존감을 느끼고,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자- 이제 핸드폰 좀 그만 보라는 자에게 반론의 표해보자.





잊지 말자. 당신의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다면, 랜선 집사가 되어보자. 얄망스러운 아이들을 팔로우해보자. 그 귀여운 어휘력과 야물 딱진 작은 손에 당신은 심장을 부여잡고 코피를 흘릴 수도 있다. 거기서 당신의 피로도 한껏 풀리고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이 랜선 족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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