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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Aug 14. 2020

내 취향과 재능을 찾아낼 시간_갭이어

쉼표 뒤에 빈칸에 적힐 문장을 찾아서.

최근 자소서를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일대기는 수도권 4년제 대학을 나온 동년배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고,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살아왔는가에 대한 대답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완료되어야 하는 일 같은데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과연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삶의 이유를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분명히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보잘것없는 것 같습니다. 나를 돌이켜보려고 하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부재합니다. 마감기한은 다가오고, 할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잡생각들은 떨어지지 않고, 자괴감만 들기도 합니다.


깊게, 그리고 편안하게 인생을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최대한 빨리 말이죠. 내 인생의 쉬는 시간을 가질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갭이어? 갭이어족!


 갭이어(Gap year)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유럽 쪽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가기 전에 쉬는 시간으로 여기는데 반해, 한국은 특이하게도 그 연령대가 2030으로 좀 더 폭이 넓고 학생보다는 직장인이 많습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볼 여유도 없이 취직을 위해 달려온 직장인들이 자아발견을 위한 시간을 갖는 자들을 '갭이어족'이라고 부르죠. 이들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느껴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갭이어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보입니다. 이 시기는 무언갈 해야 한다거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어쩌면 인생 최초의 경험일 것입니다.





규격화된 삶에서 자아 찾기


 초등학교 시절,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라고 했을 때에 옆 짝꿍과 다른 분단 친구들의 종이는 엇비슷했습니다. 19살까지 고등학교를 다니고, 20살에는 단박에 서울대를 가서 칼 졸업을 함에 동시에 취직을 하고, 모두들 30살이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해서, 바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그 이후의 인생은 어쩐지 가늠할 수도 없고, 재미도 없어 보여서 죽을 나이를 언제로 할지 고민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학창 시절 재밌는 기억들이 있지만, 학교 교육을 제외하고는 다른 활동을 접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국영수사과, 그리고 음미체. 그 안에서 흥미와 재능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로 '뭐 재미난 거 없니?'하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지금 이 상태가 미래까지 쭉 이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우리는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미래는 없는지, 원해오던 것이 맞는지에 대해 말이죠.





나의 취향, 나의 재능


 이런 얘기하기 좀 부끄럽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가 클라리넷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데, 그 악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타악기인지 현악기 인지도 몰라. 내 생활에서는 도무지 그 악기를 마주할 일이 없지만, 클라리넷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에 난 모두가 탐내는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는 거지.' 클라리넷 같은 것이 이 세상에 분명히 있는데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마주하지 못한 재능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라탕을 마주한 동기 A처럼, 아보카도를 접한 친구 C처럼.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나의 취향이, 혹여 내가 살아있는 동안 수입되지 않을 취향을 찾아 떠나봐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요? 여러분들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취향과 재능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임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복권을 사서 긁지 않으면, 이게 당첨인 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일단 복권을 긁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권과는 다르게 꽝의 좋은 점이 가득합니다. 우리의 확률은 점점 높아질 테고, 어떤 복권을 어디서 사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취향이 아닌 것들은 쌓여서 나를 확고히 만들어줄 테지요.





나에게 주는 휴가


갭이어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나에게 주는 쉬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가 건네는 가장 멋진 선물인 것이죠. 어느 것이 잘 어울릴지, 혼자인 편이 좋을지,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닌지... 그 선물을 건네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회사를 관두고 갭이어를 보낼 것인가, 병행하며 탐험을 할 것인가... 그렇게 건넨 시간이 당연히 빛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처럼 화려한 여행은 아닐지라도, 나에게 딱 맞는 시나리오가 탄생될 테지요.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갭이어는 쉬는 시간이라는 사실 말이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딱히 전과 달라진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갭이어를 통해 당신은 변화를 느낄 것입니다. 호불호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며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남들과 똑같은 생활방식에서 잠시 탈피해봅시다. 쉬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지만, 스스로의 특별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비즈 꿰기를 좋아하는지,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는지, 천상 도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골에 더 맞는다던지.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알며 자신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말이죠.





스스로 빛이 나는 사람


남들만큼 한 하는 삶을 유지하게 위해 너무나도 많은 기력을 소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삶에는 나의 목표가 필요하고, 나의 행복이 필요한데 말이죠. 우리는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느 곳에서 편안함을, 그리고 행복을 얻어내는지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면 고민해봅시다.  

 

나의 행복은 무엇이고, 취향은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봅시다. 모르겠는 건 한 번 물어보고 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스스로와 맞선을 봅시다.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인데, 잘 알아둬야 하지 않겠나요? 당신의 인생에 잠깐 쉼표를 찍고, 빈칸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나만의 문장을 써 내릴 차례가 왔습니다.

 








2019년 5월에 쓴 글인데, 저 때도 지금도 자소서의 늪에 빠져있다.

저 때는 '어디든 다니고 싶다'였는데, 지금은 '내가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회사를 다니고 싶다!가 되었다.

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곳, 어디일까나. 다시 나만의 문장을 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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