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살게. 너도 잘 살아. 술을 마시며, 춤을 추며.
너를 계속 사랑하기로, 나는 계속 슬퍼하기로. 다짐을 하니 길었던 겨울이 짧아졌다. 겨울까지만 슬퍼하기로 한 나는 그 계절이 춥디 추워서 언제 끝나나 했더니 이제는 마주한 생의 길이에 막막해졌다.
수원시엔 눈이 왔다. 입춘이었다. 나는 반사판같은 투명 아크릴판을 앞에 두고 상담사 선생님께 말했다. 친구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노라고. 과거 회상에서 벗어나 현재에서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노라고. 그리하여, 이제 납골당에 가보고 싶어졌다고.
선생님은 물었다.
"친구한테 어떤 말을 해요?"
내가 답했다.
"나는 잘 살아. 나는 잘 살고 있어."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잘 산다고 말하는데 왜 울어요."
네가 죽고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었다. 잘 살겠다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일기의 막줄에는 다짐들을 우겨넣었다. 성공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왜 울지. 나는 왜 너한테 하는 말이 생의 의지일까.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저는 잘 살 건데, 친구도 잘 살았으면 해서요. 저승에서도 친구들이랑 잘 살 수 있잖아요."
"무당이 친구가 술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노잣돈을 많이 줘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술 마시며 저승에서 친구들도 사귀어야 하니까."
우리를 버려두고, 자긴 저승에서 친구 사귀고 논다고? 화가 나서 노잣돈 못 주겠다고 짜증을 냈었다. 결국엔 지갑에 있던 현금을 털었지만서도 어쩜 신나게 춤을 추며 술을 마시니.
녹아내리는 눈처럼, 화는 질퍽해지고. 봄의 시작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은 너와 나의 시간은 틀어졌으며 내가 할 일은 이 곳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고 너의 할 일은 그 곳에서 잘 살아내는 것.
인스타를 보다 너와 함께 여행을 갔던 날의 피드를 보았다. 휴가를 내지 못한 너는 하루 늦게 왔는데, 내가 떠나는 날에 너는 이렇게 카톡을 보내왔다.
-즐거워? 사진 좀 보내줘.
-아직 가는 중이야. 차 안에서 무슨 재미를 찾냐.
-(지친 모습의 셀카)
-내가 없어서 그래.
그러게. 네가 없는 봄은 어떡하지. 네가 없는 가을은, 네가 없는 2월과 4월은 어떡하지. 7월은, 9월은 어떡하지. 네가 재미의 해결책이면, 네가 있어야지. 대안은 내가 찾아야 하는 거지?
"전에 말했지만, 전 얘를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막 이렇게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거든요. 다만, 언제나 서로가 부르면 만나던 사이였고... 삶의 일부였어요. 얘가 죽었다는 건 알겠는데, 진짜. 알겠는데, 부르면 올 것 같아요. '야, 나와.'하면, 언제든 이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얘 카톡 사진도 나고, 이번 겨울에도 만났었는데... 남은 계절들은 어쩌죠? 그게 너무 크게 다가와요. 앞으로 어떡하지?"
네가 없는 너의 생일파티를 납골당에서 하기로 했다. 이 무슨 예능 프로같은 일인지. 뼛가루도 너로 쳐야할까. 나이를 먹지 않을 너와 계속 살아갈 나. 요가 3개월 치를 등록했다.
슬픔은 나아지질 않으니, 거대한 해일처럼 다가오는 계절에도 단단하게 타다아사나로 뿌리 내려야지. 굳건한 산 자세로 서서 건강하게 살아야지.
널 향한 모든 편지가 다짐인 겨울을 보내며.
도무지 납골당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으니 생일초라도 프린트해서 갈 K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