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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May 05. 2020

사회인으로 가는 시발점

멘털 바사삭 튀긴 지원자의 인턴 면접 후기.

취업 컨설턴트가 말했다.


- 경린 씨.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자자’ 예요. 자자. ‘자’로 시작하는 줄임말인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 잘하자? 힘내자?

- 아뇨. 아니죠. ‘자’로 시작하는 줄임말이라니까요.

-… 자신감?

- 맞아요. 자신감, 그리고 또 뭐게요?

-...

- 자연스럽게. 자자. 자신감,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두 가지예요.



방학의 끝.

마지막 학창 시절의 여름방학일 거라 생각했던 건 희망으로만 그쳤다. 4학년 1학기 여름방학, 나는 취업을 하지 못한 채 강의에 출석했다. 취업계 내겠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지라,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왜 취업계를 내지 않았냐’며 물어왔다. 나는 그들에게 이유를 말해주면서 조언을 해주었다.


-취업계는 취업을 해야 낼 수 있고, 너는 어디 가서 고학력자라고 얘기하지 마라.


대외활동을 하며 얻었던 서류 패스 혜택을 사용하고 턴을 맞추니, 수중에 사용할 카드가 없었다. 그 게임에서 나는 패배자였다.



방학, 여름.

동남아와 동북아의 날씨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는 날이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간 친구에게 한국과 날씨 비교질을 시켰고, 친구는 차이가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선풍기를 쐬고 있어도 더웠다. 아침저녁으로 몸에 물을 끼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아, 인도네시아 가고 싶다. 어차피 덥다면, 여기도 거기도 덥다면. 잠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쓰는 거야. 나는 투덜거리면서 열심히 놀러 다녔다. 여행을 갔으며, 공연을 보러 다니고, 미술관을 다녔다. 김환기의 작품 속 옥빛 사슴을 들여다보며 머릿속으로는 자기소개서의 문장을 고쳐냈다.


이력서를 써내리는 날들이 괴로웠다. 마감날이 다가왔을 즈음에 나는 손을 움직이면서도 뭔갈 만들어내면서도 뭘 하는지 몰랐다. 퀄리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완성본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무얼 하는지 몰랐고, 단지 아직 남아있는 탄성에 의해 움직일 뿐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눈이 뻑뻑했다. 제출하시겠습니까? 네.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잤다. 완성에 대한 슬픔, 자괴감, 행복 그 무엇도 없이. 피곤함만을 가지고 쓰러지듯 잤다. 어쨌든, 하나 끝났다.



면접날, 오전.

서류 제출 후, 면접 일자가 바로 잡혔다. 뭘 준비해야지? 회사 사이트, 담당 브랜드, 사람인, 잡코리아, 잡플래닛, 스펙업….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뭘 준비하지? 혼란스러운 머릿속과 다르게 나는 착실하게 손을 놀렸다. 일단 열심히 보고, 답변을 작성해 보고 입으로 읽어보고, 핸드폰을 보던 눈을 치켜뜨고 적힌 걸 외웠다. 이미 대외활동을 9개월이나 했고, 브랜드에 대해서는 빠삭하다고 생각하는데…아, 1분 자기소개도 준비해야 하나?

면접 시간은 오전 11시. 일찍 일어나 정장을 사러 가라던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단정해 보이는 옷을 입고 출발했다. 여유 있게 도착해 커피를 시키고 나니, 앞사람 면접이 일찍 끝나서 도착하면 오라는 연락이 왔다. 더 뭘 봐봤자 달라질 건 없을 거야. 내가 이동해야 했기에, 막 유리컵에 나온 커피도 일회용 컵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면접장에 들어서서 마주한 건, 대외활동 담당자이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자였다. 아니,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면접관으로 나올지 생각도 못했다. 당혹스러웠다. I사의 면접 후기는 대표님 아니면 과장님이었고, 전 인턴 면접관도 과장님이었다는 말만 가득해서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 친분 있는 사이인 거 알면서 이렇게 면접관으로 나온다고요? 준비했던 것들을 말할 생각을 하니 수치스러웠다. 편하게 임하라는 두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나는 편하게 정신을 날려 보냈다.


자기소개부터 말아먹었다. 역시 국밥의 민족. 분명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는데… 아니지, 아니야…. 나 준비 하나도 안 했나? 면접장에서 나는 음-과 어-와 아-를 10번씩 3세트를 했다. 그 누구도 나를 혼내지 않았는데,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 답변을 웅얼거렸다. 가능하다면 죄송하다고 빌고 싶었다. 그러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볼 수 있냐는 질문에 고개가 들렸다. 이건 그 어디에도 없던 말인데? 원래 외국어 시키면 공지하지 않나? ‘Let me introduce my self’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내 이름 아는데, 내 이름부터 소개해야 하나? JYP? hobby에 관해 얘기해? 인사말도 해야 하나? 갑자기? 헬로우? 하이? 나이 말하는 건 너무 한국적인가? 뭘 말해야 해? 임팩트 있던 질문을 제외하고는 무슨 질문을 받고, 무슨 답변을 했는지는 당시에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모른다.



면접날, 오후.



면접은 아주 짧았으며, 집에 가는 길은 아주 멀었다. 나는 면접관이 원하는 대답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거의 가르침을 받고 나왔다. 그래도 그들이 이다지도 친절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진짜 너무 친절해서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나는 서울 온 김에 박물관을 가야겠다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집에 가면 백퍼 침대에서 눈물이나 흘릴 거야. 지하철에 앉아 나는 새내기 시절, 학회장이었던 선배한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오빠,,, 잘 지내요,,,?]


내 아련한 카톡에 직장인 신분의 선배는 칼답을 했다. ㅋㅋㅋ을 남발하며 얘기를 하다 I사와 그의 직장이 같은 동네임을 알게 되었고,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제의에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른 면접시간이 이렇게 도움을 주는구나. C사에는 학회 선배가 3명이나 있었고 나는 커피 두 잔과 차돌박이 짬뽕, 그리고 탕수육까지 두둑이 얻어먹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계속 입에 뭘 집어넣느라 말하기보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로 이사를 할 것인가, 어느 동네가 좋더라 등등.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 진짜 어른이구먼. 집 이야기하고.’


직장인의 짧은 점심시간은 내 정신을 가다듬기에 충분했다. 선배들은 회사로 들어가고, 나도 건물 밖으로 나왔다. 무덤덤하게 자기도 스물여섯에 취직했는데 조바심 갖지 말라는 선배의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셔츠와 동화책을 샀고,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봤다. 그리고 표를 뜯고 나서야 내가 아직 만 24세라 할인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빌어먹을 후기 청소년 혜택은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알찬 전시 후에 국립중앙 박물관 굿즈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면접은 망쳤지만, 그래도 나, 잘 산 것 같아.


이틀 후 오전 10시. 불합격 문자를 받은 나는 숨을 깊게 내뱉고 편히 잠에 빠졌다. 나는 내 핸드폰에 깔린 5개의 구직 어플을 삭제했다. 방학의 끝이었다.



4학년 2학기, 시작.



학교로 돌아가니 카드 잔액이 자주 부족했다. 엄마한테 용돈 이상의 돈을 달라고 말하기 싫었다. 토익 책을 샀고, 응시비를 냈고, 환급형 강의를 신청했다. 커피를 마셨고, 밥을 먹었다. 취직 준비한다고 관둔 매장 알바에서 대타를 뛰었다. 곧 경기도 버스요금이 오른다는 말에 주 4일 통학을 선택한 것에 자책했다. 엄마가 눈치껏 챙겨준 돈으로 또다시 토익책 사는 데 사용했다.


잡히지 않는 불안감을 어떻게든 유형의 것으로 만들어서 쥐고 싶었다. 없애지 못할 거, 내 방 안에 그 불안을 가둬놓고 싶었다. 학교 내 취업 관련 프로그램을 죄다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취업 동아리, 취업 서포터즈는 물론이고 대학 일자리센터에서 상담도 받았다. 상담은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그리고 더 빨리 끝났다. 담당자가 시니컬해서 좋았다. 서류를 죄다 뜯어고치기로 했다.


-경린 씨. 경린 씨라면 경린 씨 포트폴리오 보고 뽑고 싶을 것 같아요?

-아뇨. 안 뽑죠. 안 뽑을 것 같아요.

-갬성은 버리고, 남다른 모습은 지양하는 게 좋겠죠?


자신감은 바닥을 뚫는다. 취업은 처음이라, 사람들이 준 정보는 또 너무 여러 개라. 나는 고칠 점이 아주 많고, 전문성도 없다. 애 같은 말투를 쓰고, 부정적으로 개성이 강하다. 한건 많지만, 깊이가 없다. 기업이 좋아할 만한, 기업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몸매 관리를 해야 한다. 어학 점수도 별 볼일 없고, 자격증도 없으니 토익부터 따야 할 것이다.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같은 처지의 취준생들의 행태를 보면, 나는 그다지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딴짓은 그만하고, 집중해야 한다.


나는 저 말들을 다 진실로 받아들일까 두렵다. 깊이 없는 일을 해대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직무 관련성이라고는 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는 나를, 인증서 없는 일에 몰두하는 나를 질려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삶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서류의 미흡에 긍정하되, 그 안의 나를 부정하지 않을 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머저리 같음은 지켜져야 한다. 내가 무엇이 되든, 나는 나여야 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100% 투자할 수 없다. 나는 오늘의 나에게도 만족할 만큼의 파이를 줘야 한다. 나의 불안이 내 삶의 방향을 관통하지 못하도록.


오늘도 딴짓을 한다. 글을 쓰고, 침대에 누워서 빈둥거린다. 구직 어플은 삭제했지만, 메일로 계속 날아오는 채용정보는 막지도 못하고 매일 읽고 있다. 불안하지만, 너무 불안하진 않게 매일을 살아가는 중이다. 사회인으로 가는 시발점에 서있는 나와 당신들이 아무쪼록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한다.







Jang_9_p'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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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는 말하자면, 스스로가 하는 다짐입니다. 주눅 들지 않겠다. 나는 못 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면접을 멍청하게 봐서 웃음만 나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최근에 본 면접 이야기도 빨리 풀어내고 싶습니다. 개그콘서트 저리 가라 급으로 웃겼거든요.












웹진 <취향껏>에서 선 발행된 원고입니다.

https://www.chwihyangkke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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