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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이 살아있는 여자는 무서워

행복을 위해, 차라리 맘껏 본능을 뿜으면서 살리라

by 문영


탈서울은 결국 수많은 말들로부터의 도피였던 것 같다.

“어우씨, 줄 좀 짧게 잡아라!”

“여기에 왜 개를 데려와, 더럽게!”

“어머, 특이하게 생겼다. 얘는 종이 뭐예요?”

그리고 유일하게 마음 놓고 산책하던 동네 아파트 단지 화단에 시뻘건 글씨로 쓰인 경고문이 결정타였다.

‘개 소변의 독성으로 화단 식물이 고사하니 애완견 배설 절대 금지’

이젠 중이 떠날 때라는 생각에, 평생을 살아 온 서울을 떠날 결심을 했다.


시골 생활엔 말을 들을 일도, 할 일도 별로 없다. 아예 사람이 없다. 벽 하나 문 하나 두고 살던 이웃과의 거리는 100미터 200미터 이상 멀어지고,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면 내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원주민의 텃세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시골 사람들은 젊은 외지인에게 말 걸기를 어려워한다. 게다가 내게 말을 걸기 위해선 산중턱 우리집까지 몹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물리적 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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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말 대신 소리로 가득하다. 새들이 동서남북 서라운드로 지저귀면 아침이라는 뜻이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내는 느린 바스락 소리가 일하기 좋은 화이트 노이즈를 만들고, 누군가 창밖에서 낙엽을 헤치며 달리는 소리가 들리면 고라니가 놀라지 않게 잠시 얼음이 된다. 어스름해지면 뻐꾸기 울음소리에 저녁배가 고파오고, 퇴근하는 윗집 아저씨의 차 바퀴가 아스팔트를 짓이기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종일 아저씨를 기다리던 하늘이와 조이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서럽게 짖는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예외 없이 반복되는 이 전원의 소리들을 배경음악 삼아 내 일상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녹아들어갔다.


홧김에 온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삶에 만족하며 시골부심이 점점 차오르던 어느 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구씨의 말에 힘차게 차오르던 시골부심 게이지가 잠시 멈칫한 적이 있다.

“본능을 죽여야 돼. 개구리 터져 죽은 얘기 같은 거 말고, 여자들 수박 겉핥는 이야기, 그런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이런 데서 사는 한 본능을 못 죽여.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는 무서워.”

저 대사 욕 좀 먹겠다 싶은 한편, 나야말로 사람들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그런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 창틀에 죽어 있는 다양한 벌레 얘기, 윗집 개들 얘기, 아랫집 개들 얘기, 야밤에 다리 다친 고라니 구한 얘기,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사체 치운 얘기... 작가는 시골 어딘가에서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하며 스멀스멀 몰려오는 걱정. ‘구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생은 정말 개들과 살아야 할지도.’


그러나 도시로 돌아가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없다. 혹여라도 시비가 붙을까 개들과의 산책은 늘 두려운 일이었으니. 아마 그 두려움은 내 온몸을 전기처럼 흐르다가 리드줄을 타고 개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도시로 돌아가는 것은 이제 정말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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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잠깐 그치고 제법 산뜻한 바람이 부는 초저녁, 개들과 간만에 동네 산책을 나섰다. 노을 무렵에 두 개아들은 왠지 더 잘생겨보인다. 이 곳에 온 뒤 녀석들의 꼬리 놀림은 훨씬 경쾌하고, 산책 나서는 발걸음은 매일 새 소풍을 떠나는 아이들처럼 잔뜩 기대에 차 있다.


개들과 함께 걸으며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던가? 아니, 살면서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그래, 이렇게 영혼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남자들이 피할지언정 차라리 맘껏 본능을 뿜으면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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