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가슴살이 1,000원 올라도 닭들의 내일은 그대로 지옥이
포항 고양이 연쇄살해범 김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내려졌다. 역대 최고 형량 판결에 동물 애호가들은 환호했다. 살면서 누군가의 불행을 이토록 간절히 바란 적이 있던가? 그의 불행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간 엽기적인 동물 학대는 끊이지 않았지만, 양형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대범들은 법망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얼마나 더 잔인해야 그놈의 양형 기준이 마련되는지. 허울뿐인 동물보호법에 대한 원망 섞인 넋두리만 계속되고, 귀소본능 마냥 ‘결국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맺음하는 데 피로를 느낄 때쯤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다.
포항 폐양어장 고양이 학대로 기소된 정씨의 경우 징역 1년 4개월과 벌금 200만원이 내려졌다. 정씨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예전부터 이런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말하며 자신의 만행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가장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정씨 부모의 태도였다. 법정 밖에서 정씨의 부모를 마주친 동물 활동가들이 정씨를 유영철에 비교하자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니까 법에서 정한 형벌만 받으면 된다. 왜 아들을 유영철과 비교하고, 평생 감옥에서 썩으라고 하는 것이냐.”며 악다구니를 쳤다. 숫자로 갈음하는 이들의 죄는 형기를 채우면 0으로 초기화되는가? 우리는 아니라고 믿지만, 정씨가 출소하면 죄가 0이 되는 것처럼 말하는 정씨 부모의 말에, 우리에게 법치는 참 허술하고 사치스런 장치가 아닌가 싶었다.
2009년작 <실종>이라는 영화가 있다.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무서워 다시 볼 수 없다. 문성근 배우가 양평에서 개농장을 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등장하는데, 그에 의해 강제로 감금당한 뒤 점차 피폐해지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개농장에서 본 장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당에 묶여 사는 개들을 보면 어김없이 영화 속 철창과 쇠사슬이 떠오른다. 똑같은 감금인데 왜 한쪽은 불법이고, 한쪽은 아닐까. 둘다 배고프고 덥고 추워 괴롭긴 매한가지인데, 왜 한쪽은 뉴스에 날 만한 중범죄고 한쪽은 아무 일도 아닐까.
시골 마당개에 대한 감금과 방치학대를 비윤리적 행위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 법이다. 대한민국에서 개를 야외에 방치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므로 지자체는 방관하고, 이 방관 아래 비정상은 정상화된다. 이렇듯 법은 큰 잘못도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무마시켜 버린다. 합법인 모든 것은 ‘맞다’고, 반대로 불법인 모든 것은 ‘틀리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윤리’에 대한 인간의 자율판단을 무력화하고, 인간성을 발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법과 정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법에 대한 환상과 낭만에 지나지 않음을 자각했다.
펫샵에서 동물을 구매하는 것은 합법이니 괜찮은가? 구입가에는 어미들이 감당해야 할 강제임신과 감금학대에 대한 보상이 포함되어 있는가? 그 고통의 액수화는 가능한가? 동물 상거래가 금지된 서양국가도 있으니 한 인류 내에서도 ‘괜찮음’의 기준이 상이한데, 그럼 괜찮고 괜찮지 않음은 영토의 물리적 구분과 치법 영역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가? 한국 땅에선 아무 일이 아니었다가 독일 땅을 밟으면 불법이 되는 모순 앞에서, 인류는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 업체가 요구하는 금액을 지불하면 수족관과 동물원에 가서 돌고래와 호랑이를 구경하는 것은 괜찮은가? 8~16만원 사이인 거제씨월드의 돌고래와 벨루가 체험 요금은, 아무런 잘못없는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했을 바다의 자유를 빼앗고, 평생 감금하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것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 포함된 가격인가?
개들에게 먹일 닭가슴살 한 봉지가 8,900원에서 9,900원으로 올랐다. 애써 정착한 식재료인데 바꿔야 하는지 마음이 불편해질 무렵, 이 금액에 불만을 표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닭가슴살이 5~6덩이 들어있는 이 동물복지 닭가슴살 한 봉지에는 최소 닭 3마리의 목숨이 담겨있다. 한 마리당 목숨값이 3,300원. 닭에게 인간과의 소통 능력과 경제 능력이 있다면 3,300원이 아니라 그 10배를 내고서라도 자신의 목숨을 살릴 기회를 얻으려하지 않을까? 닭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닭장을 탈출할 수 있는 물리력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인간에 의해 목이 잘리는 것이다.
근데, 닭가슴살이 싸다 비싸다 왈가왈부하는 나를 보고 닭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닭가슴살이 1,000원 올라도 닭들의 내일은 그대로 지옥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