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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길면서도 짧은 매미의 생을 기억하며

by 문영

아이들이 학교 가고 없을 시간인데, 최근 낮에 단지 보행로를 가득 메운 어린이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을 자주 마주친다. 어깨에는 곤충 채집통을 메고, 잠자리채를 휘두르는 아이들. 여름방학을 알리는 풍경이다.


‘요즘도 학교에서 곤충 채집을 시키나보네.’


여름에만 반짝 사는 애들을 잡아 무얼 하려나, 살겠다고 나무에 숨어 붙어 있는 애들을 잡아 무얼 하려나. 동행한 부모들에게 채집의 목적을 묻고픈 마음은 마음 뿐. 잡았다 풀어주겠지. 하지만 잠자리 날개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야무지게 끼워 아등바등하는 잠자리를 붙들어 360도 돌리며 구경하는 꼬마를 보니, 풀어준다 한들 한 번 잡힌 개체들은 날개나 다리 한두 개쯤은 불구가 되겠구나 싶다. 날개 그렇게 잡으면 녹는데.


올해는 특히 매미들의 생애 시작과 끝을 아주 촘촘히 함께한 기분이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 때문인가. 월초, 의문의 황갈색 껍데기들이 여기저기 달리더니 곧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여름을 알리는 반가운 소리였지만 머지않아 그 소리는 좀 괴로워졌다. 새벽에도 계속되는 소음에 땀을 흘리며 깬 적도 어러번. 밖에 잠깐만 있어도 습기 가득한 탁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포화 상태인 공기를 매미 울음이 다시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안 들리면 확실히 덜 덥겠어.’


공교롭게도 이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매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전히 죽은 경우도 있지만, 희한하게 날개만 남아있거나 몸통만 쏙 남은 경우가 대부분. 부디 자연적으로… 그리된 것이기를.


포털에 곤충 이름을 검색하면 사진이 너무 크게 뜨는 것이 무섭지만 고민 끝에 ‘매미의 일생’을 검색해 봤다. 사실 치과보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곤충. 오늘 아침 이미 토막난 매미 사체를 여럿 봐선지 다행히 생경하진 않다. 매미의 삶, 그렇게 파란만장할 수 없다. 여름 사이 짝짓기를 완수한 암컷이 나무 껍데기 같은 곳에 알을 낳으면 부화한 애벌레는 온힘을 다해 땅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천적의 공격을 피해 무려 5년 이상, 어떤 종은 17년도 땅 속에 머무른단다. 마치 밤하늘 별의 반짝임이 수천 수만년 전의 소멸광인 것처럼, 지금 우는 매미들은 이미 수년 전에 태어났었다는 충격적 사실. 잠자리채로 그들을 잡아 가두려는 저 어린이들보다 나이가 많을 가능성도 있다. 맴맴 소리는 수컷만 내는데, 그 소리뜻은 “여기요! 짝짓기하실 부운-!”이라고 외치는 것이라는 어느 유튜버의 비유에 웃음이 터졌다. 그들의 짝짓기는 그야말로 사활을 거는 것. 5년 땅 속에서 대기 타다, 여름에 2~3주 살다, 짝짓기하고, 알 낳고, 바로 사망. 뭐 이런 삶이 다 있나.


작년, 혜성처럼 등장해 전 세계 문어 소비량을 대폭 줄였으리라 추정하는 혁신의 감동 다큐<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내 콧잔등이 시큰해진 장면은, 문어 선생이 다이버를 친구라고 인지한 듯한 시점부터였다.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마치 춤추듯,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이 소싯적 하던 장난을 치는 듯한 움직임. 다이버의 손에 달라 붙기도, 모양과 색깔을 현란하게 바꾸기도. 그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마저 ‘어때 경이롭지?’ 라며 내맘을 쥐락펴락 했다. 잘리고 익혀 식탁에 오른 맛있는 문어가 아니라 ’유희’하는 문어였다.


크기며, 목소리며, 육중한 몸집이며. 곤충을 무서워하는 내게는 최악인 매미도 그 짧은 생에 속에 유희라는 게 있지 않을까. 네 목소리가 큰지 내 목소리가 큰지 수컷끼리 경쟁한다든지, 어떤 나무에다가 알을 놓을지 이 나무 저 나무 취향껏 골라보는 암컷의 고민이라든지. 좀 더 의인화를 더해 일부러 사람 지나갈 때 오줌을 뿌린다거나, 죽은 척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가 나 같은 심약자 지나갈 때 갸아앙 날아올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게 놀린다든지.


이러나 저러나 나는 오늘도 내 얼굴을 향해 돌진하는 매미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 공포의 비명 메아리를 남겼지만, 상상할수록 학생들의 곤충채집 과제가 조금 야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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