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멀쩡한 표정을 짓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지나온 생애를 회상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구간이 있다.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에.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이. 일 보다 자기 몸과 마음 건강을 챙기는 것이. 소중한 존재와 함께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근데, 그게 다 세상 탓일까? 얼마 전부터 나는 내 불행이 내 탓임을 순순히 인정해 왔다. 나의 불행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말 어디서도 선택권을 찾을 수 없는 이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나는 이 식상한 두 가지를 추구하는 것을 호화스러운 호캉스를 떠나듯 사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그게 가장 필요한 순간이 바로 매일의 일상인 줄은 모르고.
진정성 있는 나만의 목표보다 집단이 그려 놓은 광신도적 환상을 좇다 보니 저런 것들은 다 뒷전에 두었다는 것을 자각한 날. 그걸 어린 시절이나 교육과정 탓으로 돌리기엔 자정 능력이 충분한 나이임을 인정한 날. 처음으로 내가 되찾은 것이 시간과 마음의 여유라는 것을 실감한 날. 그 식상한 것들이 삶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 그날의 인생 대목을 읽을 때면 언제나 코끝이 찡해진다.
시간의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동반한다. 마음의 여유는 주변을 둘러볼 마음을 챙겨준다. 빠르게 내달리던 차에서 내려 두 발로 걸으며 몰랐던 풍경을 발견하듯. 다른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면 어떤 것들을 발견하게 될까? 내 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먹고살기 바빠 날카로워진 인간의 화살이 날아가 가장 먼저 꽂히는 곳은 자기 변호권이 없는 비인간 동물이라는 사실.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도와야 한다는 간단한 윤리조차 상실해 가는 세상의 연결 고리가 녹슬다 못해 바스러지는 장면. 노인들이 눈치 안 보고 돈 안 내고 앉아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기본 존엄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 인간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 많은 농장 동물이 살육된다는 사실. 비닐랩으로 말끔히 포장된 죽음을 먹은 인간이 스트레스를 얼추 풀고 나면, 남은 죽음은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해 토양을 오염시킨다는 사실. 그 스트레스를 인간은 자의로 타의로 끝도 없이 되풀이한다는 사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비움의 지혜. 그것을 미술관에서, 비운 후에 그려낸 작가의 그림을 보며 되뇌어 본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더 가까이 일상적으로 그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여유는 각자의 삶 단위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것을. 각자의 스트레스는 결국 공동의 책임이 된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나의 행복은 결국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