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5년만의 아침 식사

코로나, 실직, 그리고 아침

by 문영
IMG_2522.jpg
IMG_2676.jpg
IMG_2854.JPG
IMG_3499.JPG
IMG_3320.JPG
IMG_3545.JPG


튀기고 끓이고 볶은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침은 되도록 날 음식을 먹으려 한다.


30년 넘게 아침을 챙겨 먹은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의사들을 불신했다. 출근하기도 바쁘고, 아침 먹으면 출근길에 졸리고, 출근해서도 졸린데 무슨 소리냐며. 지금은 잠들기 전부터 아침에 뭐 먹을까 고민한다.


영화 산업 내의 디자이너였기에 2020년 코로나 이후 나는 반-실직자가 되었다. 처음엔 몇 주 출근 안 한다고 손뼉 치며 와글와글 신났는데, 그게 3년이 넘을 줄은... 그래도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믿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되니까. 하지만 ‘출근하지 않는 삶’은 180도 다르더라.


씻고, 자고, 라면 정도 끓여 먹던 공간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을 꼬박 보내자, 집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불행하게도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가, 내가 사는 집이 나와 우리 개들의 삶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내 집, 내가 살 곳이 아니다.’ 몇 가지 사건을 거치며 그 불편함은 증폭되어 평생 살던 서울을 떠나 연고 없는 시골로 떠날 정도의 용기가 생겼다.


지평 내에서도 면 중심가와 가장 먼 깡촌에서의 새로운 삶. 배달 음식점도, 외식할 식당도 없어 요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번의 불편함은 반가웠다.


요리도, 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장보기도, 심지어 글쓰기도 남이나 기계가 해주는 문명의 이기는 언제나 좀 어색했다. 그 편리함 속에서 효율적으로 빠르게 살기보다, 불편해도 최대한 자급자족하며 느리게 생존해 내는 삶이 매력 있어 보였다. 무용하기보다 유용한 존재로 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시골의 시공간은 도시와 달라, 주변의 속도에 방해받지 않고 고요 속에서 나의 쓸모를 탐구하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채식인에게 요리는 숙명이지만 요리는 언제나 즐겁다. 명상처럼 일종의 의식이다. 점심과 저녁뿐이던 삶에 아침이 추가된 이유. (야식도 추가.) 주부들이 왜 그리들 주방, 주방 하는지 정말 잘 알겠다. 주방뿐이랴. 프라이팬, 냄비, 접시, 조리 도구, 수저 하나까지도 의미가 크다. 다 계획이 있다. 물건을 여러 개 구비해두기보다 한두 개를 바스라질 때까지 오래 쓰는 편이라 더욱.


지금은 엄마의 주방에 기생하고 있으니 내게 ‘주방’과 ‘요리’가 얼마나 중대한지 실감한다. 주방 사용법이 다른 두 사람이 좁은 주방을 공유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내 조리 도구, 식기, 조미료의 위치가 날마다 바뀌고, 빵만 굽는 아끼는 프라이팬에 달걀 프라이 흔적이 남아 있을 때의 그 배신감과 분함. 주방의 주인은 단 한 명이어야 한다! 매일 신경이 곤두서지만 내 집도 내 주방이 아니니 참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워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