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에 있어 [기왕]은 마법의 단어다. ‘기왕’ 짓는 김에 이것도 하고, ‘기왕’ 돈 들어가는 김에 저것도 하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게 된다. 그중에서도 ‘기왕’에 ‘제대로’가 붙은 [기왕 짓는 거 제대로]는 집짓기를 저 넓은 갤럭시 너머로도 확장시킬 수 있는 최고로 막연한 매직 워드(magic words)다.
설계 미팅에서 부엌 이야기를 처음 할 적에 ‘식기세척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식기세척기를 사용해 본 적 없어 단번에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일화를 전하자, 모든 지인은 경악하며 “식기세척기는 있어야지” 라고 나무랐다. 내 평생 사용해본 적 없는 식기세척기를 두고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될 것이라 했다. 식기세척기에 대한 이견 없는 찬양이 이어지니, 식기세척기 없는 부엌을 계획한 것이 엄청난 실수로 느껴졌다. 나는 ‘기왕’ 집을 짓는 사람이니까.
도면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벽장엔 스타일러가 들어갈 자리가 늘 비워져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한참 전부터 손 세정제를 여러 개 휴대하고 다닐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더러움에 민감한 나로서는 스타일러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눈에 보이는 더러움엔 둔감하다.) 식기세척기와 스타일러가 함께라면 삶의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간편하고 스마트하고 멋이 나는 삶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식기세척기와 스타일러는 우리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됐다.
설거지는 운동 같다. 하기 전에는 그렇게 싫지만, 하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마치고, 굳은 이물질로 지저분한 부엌 상판을 행주로 뽀득뽀득 닦아 낼 때. 오랜 설거지로 땅땅해진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갓 설거지해 뜨끈한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 마실 때. 나는 그 말끔한 순간과 기분을 식기세척기에 뺏기지 않기로 했다.
지평에 살 때를 떠올렸다. 여름엔 무인양품에서 산 검정색 민소매 원피스 하나, 겨울은 회색 웰론 패딩과 베이지색 코듀로이 바지 하나로 살았다.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자연스레 단벌 숙녀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껏 이불과 먼지를 털 수 있는, 천연 살균기인 태양이 여과 없이 내리쬐는 마당이 생기지 않는가.
어느 지점을 지나면 ‘기왕’은 외부가 아닌 내 속에서 울리며 수도 없이 나를 시험대에 올려 놓는다. 여전히. 처음에는 그 수백 가지 결정에 지쳐 외면하거나 미루고만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눈을 떠도 결정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아 있었다. 대신 결정해 줄 사람을 구할 수도 없었다. 혼자 사는 집을 계획한다는 것의 양면성이다. 그래서 나는 ’기왕’에 버금가는 나만의 매직 워드를 고안해 냈다.
‘괜찮다.’
‘어떻게든 잘 살 수 있다.’
나는 스타일러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식기세척기 없이도 어떻게든 잘 살 수 있다. “그래도 집은 서울에 있어야지” 라는 무적의 말을 이겨낸 사람이다.
집 짓기에 때가 있다면 ‘나 자신을 알 때’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믿을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