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은 그 짧은 생애로 오늘, 지금을 살라 일깨워준다
아파트 시계탑 사거리 나무에 벚꽃이 제대로 영글었다. 가지마다 꽃들이 어찌나 빼곡한지, 그 아래 서면 하늘에서 팝콘이 쏟아지는 것 같다. 야간에는 환한 LED 조명이 이 나무를 아래에서 환히 비추며 입체감을 더하는데, 1년 365일 켜져 있었을 이 조명의 존재가 이제야 드러난다.
며칠 동안 산책길에 그 앞을 지나면서 사람들을 지켜봤다. 지켜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개화와 함께 사람들 풍경마저 달라져서다.
이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다들 걸음을 느려지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두 손으로 휴대폰을 귀엽게 쥐고는 누군가에게 찍은 사진을 보내곤 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유모차를 밀던 젊은 엄마, 뚱뚱한 가방 멘 초등학생, 먼발치에서 쪼그려 담배를 피우던 젊은 남자. 낮이고 밤이고 누구든 이 벚나무 아래서는 바쁜 걸음을 멈추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여러 나무 중 한 그루일 뿐인데, 봄 때가 되면 이 나무 아래서 모두들 마법에 걸린 듯 순수해진다.
그 와중에 벚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걸음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산책하는 개들. 이들은 오로지 제 갈 길 가고 싶어 한다. 보호자가 멈춰서 꽃 사진을 찍어댈 때 그들은 갸우뚱하고 답답하다.
어젯밤에 계피를 데리고 밤산책을 나섰는데, 벚꽃 아래 세 가족이 시끌벅적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개족사진 하나 찍고 싶어 다가가는데, 어둠 속에서 나타난 시커먼 계피를 보고 딸아이가 “개! 개!” 하며 무섭다고 기겁을 했다. 평소라면 영악한 마음이 들어 그러거나 말거나 했을 텐데, 벚꽃 아래 한껏 순수해진 그들의 봄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들이 사진을 마저 찍을 때까지 멀찍이 기다렸다.
나무 앞에 가만히 좀 서 있으면 좋으련만. 벚꽃에는 눈길도 안 주고 이내 화면 속을 빠져나가는 탓에 결국 계피 녀석을 들어 올려 빠르게 연속으로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에 담긴 것은 벚꽃잎만큼 하얀 계피의 턱수염. 그 흐린 사진마저 귀여워 비실비실 웃는다.
‘벚꽃 열 번은 더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가능하려나?’
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눈물이 와르륵 차올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피는 가던 길이나 마저 가자며 줄을 당길 뿐이다. 그래, 그런 걱정이 무슨 소용이냐. 우리 갈 길을 가자. 오늘 예쁜 벚꽃 구경하고 신나게 자고 맛있는 거 먹으면 되지.
개들은 언제나 그 짧은 생애로 내일, 나중이 아니라 오늘, 지금을 살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