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재즈처럼

Miles Davis의 <So What>을 들으며 쓰는 글

by 문영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다행히 적당한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잠만 잘 자도 다행인 게 요즘 세상살이다. 새로운 업무 메일이 오지 않았는지 확인한답시고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가, 연이어 SNS를 켠다. 고작 하룻밤 사이 무슨 중요한 소식이라도 놓친 사람처럼 눈알이 시리도록 스크롤을 넘긴다. 화려한 이미지들, 시선을 잡아 끄는 쇼츠들. 이상하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것들을 보는데도, 새롭지 않은 이 기분. 요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질문 때문일까?


‘어떻게 살 것인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사건, 사고들이 벌어진다. 한강 다리가 무너지거나 백화점이 폭삭 주저앉던 과거의 사건은 해결책이나 개선책이라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25년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물음표가 가득 떠오른다. ‘대체 왜?’ 기본이 안 되어서, 주의를 쏟지 못해서, 법을 지키지 않은 누군가의 잘잘못이라면 고치면 된다. 하지만 예컨대 일면식 없는 사람을 흉기로 찔러 죽이는 일 같은 경우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 일이지만, 여기에 우리 모두가 연루되지 않은 일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이 세상에 소리도 형체도 없이 감도는 ‘질서’ 속에서. 그 질서는 세상을 잘 유지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오늘 아침에 훑어 넘긴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쇼츠들. 그 모든 새로운 것들도 일정한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더 날씬한 몸, 더 좋은 집, 더 맛있는 음식.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는 서로의 삶을 구경하고 염탐하며 ‘평균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내가 올린 이미지, 내가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질서의 미세한 세포 하나를 형성한다. 특정 연령에 도달하면 성취해야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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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삶도 별다를 게 없다. 성격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고, 새로운 공간에 가서 적응하는 것을 귀찮아하며, 영화나 드라마는 봤던 것을 열 번 스무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성향. 아마 정신의학적으로는 ‘강박’ 성향이지 않을까 싶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삶의 순간과 선택이 무거우니까.


뜬금없지만, 내가 ‘2025 자라섬재즈페스티벌 홍보 자라지기’에 지원한 것은 그 때문이다.


완벽하기 위해서 내일, 모레, 몇 주 뒤, 다음 계절, 다음 해까지 대비하는 내게 시간은 그야말로 금이다. 늘 할 일이 쌓여 있고, 노동은 곧 대가라는 수식이 십수 년 동안 박혀 있는 삶. 그런 내가 ‘자원봉사’에 나를 휙 던져 놓은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획에 없던 곳에 나를 둬 보기로.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한 번 보기로.


계기가 있다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가평’에 답이 있을 것이다. 30대 여성이 혼자 거주하기에는 ‘평균’과 거리가 먼 장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서울에서 평생을 살다가, 이곳에 오기 전에 양평에 잠시 거주한 적이 있다. 서울이 싫어서 홧김에 이사했는데, 고생깨나 했지만 본의 아니게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났다. 삶의 방식의 전환점. 그리고 드는 생각.


어디다 갖다 놔도 제법 잘 사네? 나를 아무 데나 갖다 놔야겠다.


그렇게 흘러 흘러 삶은 나를 가평에 내려놓았고, 이제 여기를 뼈까지 묻어야 한다. 그러자 이곳에 대해 좀 더 파고들고 싶었다. 그러다 홍보 자라지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연고 없는 가평이지만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는 연고(?)가 있다. 10년 전 처음 방문했던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어렴풋한 기억이다. 해 질 녘 오후에 일행들과 자라섬에 도착했다가, 깜깜해진 밤에 자라섬을 떠나 칠흙 같던 북한강변을 달려 서울로 향하던 기억. 사방은 어둡고 오로지 무대 조명만이 잔디밭에 앉은 관객들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조금 쌀쌀한 가을밤 한 가운데 조명빛을 받으니 마치 뜨듯하고 가느다란 샤워 물줄기가 얼굴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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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열렸던 홍보 자라지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어느 명언을 들었다.


“재즈는 삶을 연주하는 법이다.”


재알못이라도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명언이라는데, 간단한 검색만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명언 제조기였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명언도 마음에 든다.


“재즈에서 틀린 음이라는 건 없다.”


이 명언을 삶에도 곧바로 대입해본다면,


“세상에 틀린 삶이라는 건 없다.”


단순한 단어 치환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다. 우리가 자꾸만 잊고 있던 사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부모에게서 태어나, 매 순간을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놓고, 그 삶을 모아 놓으니 비슷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고 기괴하지 않나. 이 세계는 얼마나 정석대로 삶을 연주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이탈음을 잘 내는지에 대한 콩쿠르가 되어도 모자랄 판이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다시 연을 맺으며 ‘재즈 정신’을 삶에 도입해 본다. 홍보 자라지기로 활동하는 동안이라도 인생을 재즈처럼 살기. 세상의 질서 속에 스스로를 가둬가고 있는 느낌이 들 때, 새로운 것을 접하고 있지만 비슷한 것의 연속에서 뇌가 굳어져가는 느낌이 들 때, 의도적으로 이탈음을 연주하기. 그리고 그것이 틀렸다는 생각하지 않기.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시작했지만, 마일드 데이비스의 대표곡을 틀어 놓았다. 지금은 <So What>이 흘러나오고 있다. 질서가 있는 듯 하지만 곡의 진행은 예상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음악이지, 소음은 아니다. 심지어 괜찮은 음악. 문득, 인생을 재즈처럼 살면 세상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IMG_1550 copy.jpg '인생을 재즈처럼'을 표현한 5초 물감 드로잉. 세상에 틀린 드로잉은 없으니 다시 그리지도, 고쳐 그리지도 않았다. © Moonyoung Joe


*이 글은 2025 자라섬페스티벌 홍보 자라지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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