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퇴비함에서 세계를 본다

나의 음식물 퇴비함 이야기

by 문영
IMG_1869.JPG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자랑하려고(?) 현관 가까이에 둔 나의 음식물 퇴비함.


이번 주택 살이 중 꼭 해봐야지 싶었던 것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 만들기다. 2개의 통에는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반년 치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흙, 낙엽이 섞여 있다. 수분이 점점 빠지니 열 때마다 부피가 줄어 있다.


나는 비건, 우리 개들은 굳이 구분하면 폴로 베지테리안(Pollo vegeterian)이다. 우리 개들이 고기를 남기는 일은 없으니,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라곤 다 땅에서 난 것들이다. 그러니 땅에 묻으면 되지 않나 싶지만, 지평에 살 때 해보니 땅을 여기저기 계속 파기도 쉽지 않고, 겨울에는 삽이 들어가지도 않고, 염분을 뺀다고 뺐지만 막상 땅에 묻자니 죄스럽고 애매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유튜브로 공부도 많이 하고, 직접 음식물 퇴비를 만드는 이웃집 정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노하우를 많이 얻어 퇴비함을 제대로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부엽토가 있고, 흙 파기 어려운 겨울에는 나뭇잎이 지고 바람 몇 번 불면 낙엽이 한구석에 알아서 모인다.


퇴비 만들기 첫해. 모든 것이 미흡하니 구더기 지옥도 봤고, 엄청난 악취에 역겨워하기도 여러 번, 이래가지고 퇴비가 되겠나 싶어 포기하고 건조기 살까도 싶었다. 그러나 차츰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 속에 있다.


시간이 흘러 음식물 쓰레기가 훌륭한 퇴비가 되고, 내 텃밭 채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자란 채소가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Circle of Life>처럼 완연한 순환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겠지.


1CF0E60F-5982-419B-A09B-FC51E88CE2CF.JPG 숲에서 낙엽을 챙겨 와 생태계에 영향을 줄 것도 없이, 집 한편에 겨우내 모여든 낙엽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손쉽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퇴비함이 생긴 것은 잘된 일이지만, 먹을 만큼만 사고, 식재료를 잘 보관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이 모든 것의 해법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하면 다양한 종류의 죄책감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죄책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남긴 음식물은 살균/건조/분쇄의 가공을 거쳐 주로 가축 사료의 원료나 퇴비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축산농가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사료는 고기의 상품성을 저하한다는 이유로 기피해, 사료로 사용되는 것은 4%에 불과하다. 다음으로는 퇴비인데, 이 또한 농사 면적이 감소하니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그럼 그 많은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충격과 함께 마음이 무너져 내린 부분이다. 음식물 쓰레기의 50% 가까이가 불법 개농장에서 사료로 쓰인다는 통계였다. 그만큼 개농장에서 키우는 개가 많다는 방증. 이 과정에 또 여러 불법이 있다. 개농장주가 폐기물업체로 둔갑해 음식물을 돈 받고 가져와, 법으로 정한 가공(가열처리)을 거치지도 않고 개들에게 먹인다.


내가 개농장에서 목격했던 빨갛고 노랗고 분홍색인 그 역겨운 음식물 쓰레기 더미. 먹을 것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그 비릿하고 시큼한 것을 먹었을 게다. 개농장 뜬장에서 구조된 우리 치토도 여전히 자기 똥을 먹는 ‘식분증’이 있다. 짬밥이 얼마나 먹기 싫었으면 자기 똥까지 먹고살았을까.


지들이 남긴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자란 개를 먹겠다고, 여름이면 보신탕집에 득달같이 모이는 작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외식을 할 때는 특히 더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만 달라고 하거나 꾸역꾸역 배불러도 욱여넣는다. 그거 한 그릇 다 먹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가난한 나라에서는 ‘food’라는 단어와 ‘waste’라는 단어가 결합하는 것조차 이해 못 한다는 이야기를 겸연히 떠올려보자.


미래의 집들이 손님들에게는, 여타 집들이처럼 잔칫집 진수성찬 내놓지 않는 단출한 식탁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린다. 일손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음식 남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든 집주인임을 고백한다.


오늘도 이 느릿한 음식물 퇴비함에서 동그란 세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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