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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나이 35세

고독을 자유롭게 주무르는 파일럿

by 문영

좋은 나이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20대는 뭐가 그리 외로웠을까? 늘 잃어버린 조각을 찾는 미완성 퍼즐 같았다. 외로움도 나이 들어 자취를 감추었나? 자문해 보니, “외로움의 성질과 모양이 바뀌어 존재한다”고 답한다. 결핍에 휘둘리던 노예에서, 고독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파일럿으로.


두 개아들을 건실히 키울 의무, self-employed로서 보다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는 책임. 무엇보다 도시를 떠나 저 먼 녹색 우주에서 보낸 2년이 고독을 대하는 태도 변화에 큰 몫을 했다. 서울까지 멀어, 어찌할 도리 없이 숱한 관계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야 했을 뿐인데, 막상 산 중턱에서 자연의 목소리만을 벗 삼아 지내보니 홀로 먹고 자고 노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더라. 깨가 쏟아지는 고소한 고독. 아이러니하다. 외로움이란 누군가 함께 있음으로 해소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연락 한 번이면 언제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서울. 도시의 밀도 높은 연결이 인간을 더 외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누구든 만나야할 것 같은, 고독을 불편한 냄새처럼 대하는, 도시의 과잉 소통과 관계의 과잉. 개개인이 느끼는 외로움의 모양은 다양한데, 사회는 외로움을 세분화하지도 못했고 고독을 가만히 두지도 못한다. 그나마 MBTI의 유행으로 ‘I’의 존재가 인정받기 시작한 정도.


‘시골에 살면 도태되는 느낌이 들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그렇다기엔 격주로 서울에 놀러 왔다. 일요일 저녁, 반대 방향의 귀경길 정체를 안타까운 척 구경하며 뻥 뚫린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으로 귀가하는 양평군민의 자부심과 짜릿함이란.) 어딘가에 반드시 속하고,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기대하며, 누굴 만나든 제법 어울리는 척 했던, 그 시절 고생스러운 짐가방은 이제 거의 내려놓았다.


하기 싫은 것은 가끔 안 하고. 싫은 만남은 거절하고. 일을 망쳐도 자책 않고. 매일 한 번은 땀이 나게 운동하고. 내 몸, 내 감정, 내 마음 편안함에 기운을 쏟는다. 그러니 일이 많아 지쳐도, 혼자 덩그러니 놓여도, 문득 내가 가꾼 숲을 돌아보면 ‘뭐가 더 필요한가?’ 싶다. 그러니 주변의 가엾음을 향하는 눈길은 짙어지고. 그러니 동물 학대자를 보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지옥불에 던지고 싶고. 그러고 산다.


어릴 때 어른들 따라 마트에 가면 어제 분명 쓴 돈이 오늘 지갑에 다시 생겨있는 것을 보고 ‘어른 = 지갑에 현금이 저절로 생기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어른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한데, 결국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혼자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결핍, 고독, 외로움을 모른척하며 유령 취급 하기보다, 잘 보유하고 있다 적시적기에 운용하는 것. 마음 무너짐을 헤아려 다스릴 줄 아는 것. 편안함에 이르는 것. 보다 자연스러워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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