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생각은 ‘지평’을 거치며 새로운 ‘지평’을 맞이했다
지평 시골집을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주인아저씨와 전세금을 정리하며 2년 계약이 비로소 끝났다. ‘시골집 이사는 6개월도 걸린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한다. 두 달간 질질 끌고 온, 시골다운 느릿한 이사였다. 전세금을 기다리며 깨작깨작 남겨 두었던 모든 짐을 차에 실었다. 몸집 작은 내게 무척 거대했던 집이라, 어딘가 짐이 또 남아있을까 봐 트렁크 문을 계속 닫지 못했다.
바람이 일자, 언제나 스트레스를 날려주던 그 소리가 났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자작나무인지, 은사시나무인지 모를 저 창백한 나무는 참 차분하고 유려한 소리를 냈다. 자연 음감실과 다름 없던 데크에 앉아 개들과 함께 볕을 쬐던 수많은 오후들을 떠올리니 조금 눈물이 났다. 오염되지 않은 선명한 시골 볕을 개들에게서 빼앗아 미안했다.
시골의 정취는 매일을 소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슬이 될 준비를 하는 수증기로 차분한 새벽녘 채도, 아침 새들의 쨍한 지저귐, 손가락으로 별자리를 그려보게 만드는 쏟아지는 별의 밤, 달이 너무 환해 달을 등져야만 잠에 들 수 있던 밤들. 서울살이에 대한 미련이 고갈되었다고 표현하기보다, 자연이 압도적으로 위대한 까닭에 인간은 자연히 적응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골에 ‘시며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테다. 이제 몸과 마음은 지평이 고향이라고 굳게 믿는다. 아저씨가 시공에 조금 신경을 쓰셨더라면 지금 이 글도 지평의 달밤 아래 쓰고 있었겠지만.
집에 대한 생각은 ‘지평’을 거치며 새로운 ‘지평’을 맞이했다. 그저 잠자고 휴식하는 네모 상자가 아니라, 집도 호흡하고, 거주자의 희로애락과도 호흡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체득한 생활 양식을 영양분 삼아 미래의 집을 그린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저축을 한다. 나, 나의 동거견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생길지 모르는 동거인도 고려해서. 늘 만약은 대비해야 하잖아. 가능하면 우리 첫째 개아들이 다음 생으로 환생하기 전에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서 다시 투명한 볕을 쬐고 싶다.
서울에 돌아오니, 수십 년간 보이지 않던 서울의 속성들이 보인다. 연결과 근접. 서울은 연결되고 싶지 않을 때도 연결이 강요되는 곳이다. 아침부터 잠이 들 때까지 연결이 끊이지 않고, 종일 연결되었던 그 기억을 안고 잠을 잔다. 우리는 늘 가까이, 가장 좁고 비싼 땅에, 비싼 차와 물건을 가지고 모여 살다보니 갈등은 무섭도록 날카롭다. 도시의 수많은 갈등은 너무 가까이 살고 있음으로 인해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도시의 외로움은 언제나 연결될 수 있다는 편의와 희망 때문이 아닐까.
시골은 그 많은 연결의 고리를 끊고 고독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그 고독은 ‘외로움’이나 ‘고립’이 아니라 ‘비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문명과 한 발치 떨어진 곳에서 소비를 비우고, 가공식품을 비우고, 관계를 비우다 보면, 끝내 보이는 것은 자연의 위대함과 그리고 그 위대함 앞에 덩그러니 놓인 나 자신 밖에 없다. 작지만 초라하지는 않다. 다만 그 무엇도 2주만에 사람 키만큼 자라는 잡초보다 강인한 것은 없다. 그 무엇도 가득 쌓인 눈을 단숨에 사그러뜨리는 태양보다 전지전능한 것은 없더라.
남의 것과 내것을 비교할 여유도 없이, 내 가진 것만 잘 바라봐야 하는 곳. 가진 것을 불려 뽐낼 필요 없이, 가진 것의 충분과 괜찮음을 가늠해보는 곳.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는 말의 의미를 모르던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내 삶이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품엔 그간 썩 사용할 일 없던 배변봉투가 바리바리 달려있다. 별것 아닌 이 배변봉투는 다시 ‘연결'되는 삶을 시작했음을 반증하는 물건이다. 단지 내에 누군가 치우지 않은 개똥이 내 책임이라 오해할까봐, 일부러 알록달록 잘 보이는 디스펜서를 두개씩. 봉투도 7센치 정도 꺼내놓고. 이제 우리 개들의 응가는 마당에서 햇빛에 바싹 말라 흙화되기를 기다리거나, 낙엽 덮인 익명성 응가들 옆에 슬쩍 밀어놓을 수 없다. 서울은 깨끗함의 규칙으로 연결된 곳이니까, 다시 도시의 동물 혐오와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야 하니까. 이제 린넨원피스 하나만 주구장창 입는 단벌숙녀로 살 수도, 욕실화 신고 얼렁뚱땅 장 보러 갈 수도, 새벽에 피아노 두드릴 수도 없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시골로의 회귀까지 건조한 초연결의 도시 서울에서도 지평의 호흡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빠른 시일 내에 시골에서 다시 환하게 인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