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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멍난 숟가락 Dec 22. 2017

아... 새우튀김이여!

메뉴 선택 시 남모를 고민 한 가지

메뉴 선택을 해야 할 때, 남모를 고민 한 가지를 더 하게 된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내 맘에 안 드는 메뉴를 골랐을 때, 어떻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할 것인가! (느낌표를 꽝하고 찍어버린 건, 그만큼 표정관리가 어렵다는 얘기다!) 나도 모르게 흔들리는 동공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지, 뿌루퉁해지는 입술을 어떻게 침착하게 유지할지 고뇌에 빠지는 것이다. (나도 왜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진지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유전자의 문제인 듯하다.)     


한 번은 지인들과 고기를 먹었는데, 후식은 고깃집 앞에 있는 냉면집으로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정말이지 진심) 나는 고기만으로 충분히 배가 불렀다. 다만 불가항력적으로 냉면 얘기가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 물냉면 한 그릇이 뿅 나타났고, 어떻게 조제해야 맛이 있을지 식초와 겨자 양을 가늠해보기는 했다. (정말이지 내 의지를 넘어서는 어떤 힘이 작용했다.)     


그런데 고깃집에서 나오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배가 부르네”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냉면 안 먹어도 되겠다” 그렇게 냉면을 안 먹는 분위기로 흐르던 중, 갑자기 일행 한명이 내 얼굴을 보더니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냉면집 가자!”      


이런 일이 꽤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그날도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생과 벼르고 벼르던 초밥을 먹으러 간 날이었다. 우리는 죽부터, 온메밀, 새우튀김, 초밥 13개를 둘이서 정확히 반반씩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음식은 푸짐한 건 물론이고 맛까지 모두, 완벽했다. 특히 바삭한 새우튀김을 타르타르소스에 찍어 먹을 때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눈으로 대화하며 미션을 완수하듯, “각자의” 음식을 하나하나 해치워나갔다.      


그런데 즐거웠던 식사가 끝나갈 무렵, 옆 테이블의 광경에 그만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시어머니, 젊은 부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손주가 앉아 있었는데, 음식이 모두 손주에게 “몰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시킨 것과 똑같은 세트 메뉴 두 개에 초밥 하나를 시켰다. 그러니까 사람은 네 명인데, 3인분을 시킨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네 명인데, (다른 건 몰라도) 새우튀김은 단 두 개! (그렇다. 나는 새우튀김을 몹시 좋아한다.) 그렇다면, 새우튀김을 과연 누가 먹어야 한단 말인가!      


사이좋게 2등분씩 해서 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그런데……, 그런데!! 옆 테이블 시어머니는 가위를 달라고 하더니 새우튀김을 약 1센티미터의 길이로, 모조리, 잘라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는 며느리에게는 먹어보라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그 아작난 새우튀김을 모두 손주 입속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손주가 씹을 새도 없이. 삼킬 새도 없이. (아......) 결국 손주는 침이 접착제가 된 커다란 새우튀김 볼을 토하듯 뱉어버리고 말았다. (아......)     



만약 내가 그 며느리라면 표정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주문을 하는 순간부터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질 테고, 덩달아 눈빛도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할 거다. 양 볼의 근육은 뻣뻣하게 굳어갈지 모른다. 필사적으로 이 모든 증상들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겠지만, 시어머니의 가위질에 산산이 부서지는 새우튀김을 보며 끝내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 거다. 그리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시어머니/ 에미야, 너 표정이 왜 그러니?

나/ 어머니, 제 표정이 어떤데요?

시어머니/ 왜 니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데, 밥그릇 뺏긴 강아지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니?

나/ 어머니. 어린 장금이가 그러죠?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라고 얘기했는데, 왜 홍시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시어머니/ 그게 무슨 말이냐?

나/ 그러니까 제 표정이 이렇게 되는 건, 저도 이름과 얼굴을 알 수 없는 제 조상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탓으로써....     


계속 쓰려니 고민이 더 깊어지려고 한다. 나한테는 아직 시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이도 없고, 더더군다나 남편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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