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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Nov 26. 2022

5개월 만에 폐업한 카페의 사연

오픈에서 폐업까지


새마을금고 자리에 카페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넓은 공간이 아니라 체인점은 아닌 것 같고, 지금까지 있던 카페와는 다른 좀 특색 있는 카페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기는 아파트 앞 상가 코너 자리였는데 바로 앞은 버스 정류장이 있는 인도, 기역 자로 꺾인 옆면은 벤치와 나무가 있는 아파트 가장자리의 작은 공터가 있는 명당이었다. 

'나라면 공원 쪽은 폴딩도어를 할 텐데. 봄부터 가을까지 활짝 열어놓고 밖에도 의자를 놓으면 얼마나 좋아. 왜 그런 생각을 안 하지, 어린아이 손님은 카페 옆 공터에서 놀고 부모는 떠드는 아이와도 조금 편한 마음으로 카페에 올 수 있을 텐데. 사장님이 아이가 많은 동네 특성을 모르나.' 길을 지날 때마다 조금씩 카페의 모습이 갖춰지는 걸 보며 완성된 모습을 제멋대로 상상하속으로 훈수를 뒀다.


은행이 없어진다는 걸 알고 나는 여기에 미술 학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폴딩도어를 열어 놓고 나무 사이사이에 긴 줄을 걸어서, 아이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상상을 하면서. 봄가을에는 돗자리를 펴고 나와서 직접 나무를 보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술 학원을 차릴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이건 그냥 내 습관이나 유희 같은 것이다.

나는 토포필리아(Topophilia)로 어떤 공간이든 탐내고 꿈꾸는 버릇이 있다. 토포필리아는 미국의 지리학자가 만든 말로, 그리스어의 장소를 말하는 토포스(topos)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를 합친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동네와 집에 집착하고 작업실이든 사무실이든 나만의 공간을 끊임없이 꿈꾸는 내 공간 성애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을 찾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동네를 걸을 때나, 낯선 곳에 여행을 가서도 나는 카페로, 식당으로, 학원으로 마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속에 갇혀있는 형상을 꺼내던 것처럼 그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을 상상하길 좋아했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은행 집기가 빠져나가고 이 주가 지나자 곧 카페가 오픈했다. 오픈 이벤트로 디저트를 사면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주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를 아무리 심플하게 한다고 해도 이 주 만에 은행에서 카페로 업종이 변경되는 게 가능한가 조금 놀랐다. 그랬던 카페는 빠른 시작만큼이나 빠르게 문을 닫았다. 두 달 도 못 버티고 닫는다고? 깜짝 놀라서 헤아려 보니 벌써 5개월이 지나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5개월 버티고 폐업이라니, 사장님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마는 너무 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카페에는 딱 한 번 갔었다.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으니 한 번 가보자 하는 마음이었지만 사실은 유리벽으로 보이는 실내 풍경은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 가구는 요즘 테라스에서 많이 쓰는 철제 의자와 테이블이었고, 메뉴도 요즘 유행하는 스모어 쿠키가 주를 이루었다. 밖에서는 안이 훤히 보였는데 그게 신경 쓰였는지 셀로판지처럼 빛나는 시트지가 붙어있어서, 카페에 앉아 있으니 마치 커다란 어항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벽에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돌고래 풍선도 붙어 있었다.

나는 그 불편한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하면서 계속 돌고래를 쳐다봤다. 사장님 아이 것인가? 어쩌면 시트지와 돌고래 풍선은 사장님이 의도한 아쿠아리움 컨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에 둘째에게 저 풍선 보여주러 한 번 와야지(사장님이 아이 손님을 겨냥해서 붙여둔 거라면 내가 그 미끼를 확실히 물었다) 그리고 앞으로 여기 혼자 올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자주 가던 떡볶이 가게가 없어져도, 가깝다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인스타그램에서 사라져도 그 여파가 꽤 길게 가는 미련 가득한 사람이 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든 시간이 너무 빨랐던 이 카페에는 정을 줄 기회가 없었다는 거다.

커다랗게 임대 붙진 카페 앞을 지날 때마다 요즘은 공간 대신 공간을 꾸렸던 사람에 대한 상상을 한다. 사장님의 폐업 이유가 영업이 안 되어서 보증금을 까먹다가 나간 거라면 너무 슬프니까, 아주 쉽게 카페를 열고 닫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을 거라 상상해 본다. 아니면 그 시기 로또 1등이 사장님이었다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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