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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Feb 03. 2023

한가한 카페라는 거짓말

드라마라서 가능한 

연기 구멍 없는 드라마는 잘 쓰인 문장으로 빼곡한 책 한 권을 읽는 기분이다. 다음 장을 넘겨도 틀림없이 좋은 글이 이어질 거라는 확신을 갖고 오로지 즐거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의문스러운 전개가 나올지 모른다고 조마조마 해지거나, 뚝딱거리는 배우를 보며 의아해하지 않아도 되는, 머릿속에 그 어떤 물음표도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독자가 아닌 시청자가 되는 기쁨이 무척 크다.


요즘은 <일타스캔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정경호 배우는 종이인형처럼 픽픽 쓰러져도 참 하찮게 멋지고. 전도연 배우는 여전히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이 하트가 되고 만다. 재벌집으로 환생하던 드라마에서는 상대방 배우에게 한방 날리는 대사를 할 때마다 입술을 앙 다물던 5-2를 보는 게 괴로워서 종영까지 보지 못했는데 이 드라마는 다행히 마지막 회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몰입을 방해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전도연 배우님의 드라마 속 직업 때문이다. 스타 수학 강사와 반찬 가게 사장님의 이야기이니 아무래도 학원과 반찬가게가 배경이 될 때가 많은데, 2년 동안 엄마의 반찬가게를 돕던 경력이 드라마라는 걸 잊고 불쑥불쑥 참견하고 싶게 만든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아마도 둘 뿐 인 듯한데. 드라마 속 매장의 1/6도 안 되는 작은 가게에서 네 명이 쉴 틈 없이 요리했던 걸 생각하면 저 둘은 거의 신의 손에 가까워 보인다. 찬장에 보이는 간장이나 식용유 병은 또 어떻고. 저건 가정용인데.... 일주일이면 다 쓸 텐데.... 엄청 비싼데... 그러니까 장사가 잘 되는 데도 돈을 못 버는 건가 자꾸 딴생각이 든다.


가게 오픈시간 전, 카운터에 앉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또 혼자 조급해진다. 손님 오기 전까지 제일 바쁠 시간일 텐데, 어른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들통에 국을 끓이거나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크로켓을 튀기를 전쟁터 같은 주방 모습을 그리기 어렵다면 하다 못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콩나물이라도 다듬어야지. 저럴 시간이 어디 있담.


‘아니 장을 보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고? 그 작은 짐칸으로는 4인 가족 장도 못 볼 것 같은데?' (보통 반찬가게는 박스 단위로 장을 보고, 주로 거래하는 업체에 전화로 주문하면 매장으로 배달해 준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전도연 배우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게 위생모를 쓰고 장화를 신고 물청소를 하며 상대 배우와 사랑을 키울 순 없을 것이다. 그저 내가 어쩌다 아는 분야 나와서 심하게 몰입했을 뿐.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드라마를 봤을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본 의사들은? 슈륩을 본 역사학자들은? 천 원짜리 변호사를 본 변호사들은? 그리고 커피 프린스를 본 카페 사장님들은 또 어땠을까. 애초에 커피 내리는 공유라니, 판타지라고 여겨야겠지. 


드라마 속에서 카페는 주로 배우들의 배경이 되고, 카페에서 사장은 꽤 느긋해 보인다.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손님이 없을 때는 하릴없이 마대자루를 밀며 바닥을 닦(는 척을 하)거나, 카운터에 턱을 괴고 앉아 시간을 때울 때도 있다. 


심지어 카페를 운영했던 지인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 가게를 차릴 때만 해도 손님이 없을 때는 책도 읽고 글도 좀 쓸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굳이 카페 사장님이 되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현실에서는 카페든 반찬가게든 일하는 사람은 손님이 없을 때도 계속 무언가 하고 있다. 아주 지저분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들이라 드라마에는 영영 나오지 않을 테지만. 하긴, 그런 걸 다 보여주어 뭣하나. 드라마는 드라마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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