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괜찮은 이디야
우리 동네 이디야는 학원가에 있다. 수학, 영어, 국어 학원들과 피시방, 스터디 카페가 있는 7층짜리 건물에 병원과 이디야 카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공부하는 아이들의 놀 곳과 쉴 곳 아프면 갈 곳까지 친절하게 모여있는 게 어딘지 서러워지는 위치다.
학원가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답게 주 고객층은 위아래 검은색으로 깔맞춤 한 중고등학생 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이른 아침 카페로 출근하는 손님은 황송하게도 내가 유일하다. 이 시간 카페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들 보내놓고 이제야 한숨 돌리는 엄마들의 휴게소가 되거나, 노트북을 무기처럼 끼고 나오는 어른들의 스터디 카페가 된다는 걸 생각하면 혼자 누리기 아까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작업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느 날 사장님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콘센트를 연결해 노트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염치가 있으면 월세를 1/n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저항 없이 지갑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넓은 카페를 쾌적하게 혼자 쓰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좀 외롭다. 특히 주말 저녁 이디야는 더욱.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타자를 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어느새 학생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카페에 나만 남아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 주 동안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치맥을 즐기고 있겠지? 이 좋은 날 일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가 살짝 억울해진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프리랜서 사이 룰이라도 있는 걸까. 이 동네에서 주말에 일하는 프리랜서들은 다 스타벅스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나만 장소를 착각하고 여기 왔나.
주말 밤에 일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제발 누구 한 명이라도 노트북을 들고 여기로 좀 와줬으면 좋겠는데... 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책 읽는 사람이라도 발견하길 바라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 외로움과 싸우며 이디야를 지킨다.
그럼에도 왜 스타벅스로 가지 않느냐, 우선은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곳이 여기고 스타벅스의 동그란 테이블 보다 네모난 이디야의 테이블이 노트북이나 종이를 펼쳐놓고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메뉴 구성 역시 오래 앉아 있기에는 이디야가 더 낫다. 고시생에게 식권 식당이 있다면 프리랜서에게는 이디야 푸드가 있는 느낌. 아무리 재료가 풍성한 샌드위치라도 밖에서 파는 빵 대신 그래도 곡기를 먹고 싶을 때는 매콤 로제 주먹밥을 주문하고 다시 한두 시간 더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유독 커피가 싫은 날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다양한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고소한 제주 호지 라테. 버블 흑당 라테도 즐겨 먹는다. 무엇보다 이디야에는 내 번아웃을 달래주는 메뉴가 있다. 돈 안 되는 글쓰기가 허무해질 때나 매일 혼자 카페에 나와 일을 하는 것이 모래성을 쌓은 것 같이 느껴질 때, 잠시 카페 작업자의 의무를 내려놓고 오직 쌍쌍 츄로스를 먹기 위해 카페에 간다.
바삭하게 구운 츄로스는 봄날의 놀이동산 맛이 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며 철없이 좋아 죽던 애인과 오래 줄을 서서 먹던 설렘의 맛. 관광지 바가지도 없이 겨우 2,200원 이면 그 달뜬 마음을 되살릴 수 있다. 기분이다 싶으면 초콜릿 디핑소스를 주문해서 꾸덕한 초콜릿을 쿡 찍어 시나몬과 설탕 가루를 떨어뜨려 가며 입안 가득 밀어 넣는다.
이 츄로스 두 개를 다 먹어 치울 때까지는 가방에서 노트북이나 책 따위를 꺼내지 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