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맛없는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시외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또 한 시간이 달려 목적지에 왔다. 지방러에게 홍대에서 저녁 7시 약속이란 이런 것이었다. 카페에 가야 한다. 지금 당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갈증을 꾹 참고 편의점에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목적지 근처 가고 싶은 카페는 미리 알아두었었다. 목요일 저녁이니 설마 만석은 아니겠지. 당을 채워줄 작은 디저트 하나 곁들여서 커피는 아이스로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카페로 향했다.
베이커리 카페가 아니니 디저트 메뉴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작은 오븐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잼을 곁들인 스콘이나, 휘낭시에 같은 것 하나라도 괜찮았다. 카운터에 있는 쇼케이스에는 케이크 몇 종류가 있었는데 체인점 카페들에서 자주 봤던 익숙한 생김새를 보아하니 냉동실을 거쳐 나처럼 다른 곳에서 왔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디저트는 포기하고 커피를 달게 먹기로 했다.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주문하고 잠시 카페 책장을 구경했다. 애초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카페라 여기에 왔으니 디저트 따위는 신통치 않아도 상관없었다.
진동벨이 울리고 카운터 앞에는 덩그러니 유리잔 하나가 놓여있다. 컵 받침도 없이? 쟁반도 없이? 이렇게 끝인 건가 정말. 티슈 한 장 받쳐주지 않고 처량하게 서있는 유리잔을 카운터에서 받아와 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음료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음 주위에 벌써 투명한 물 테두리가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어 보이는 6,500원짜리 바닐라 라테 한 잔을 노려본다. 대학 시절 내 시급을 단숨에 소비해 버린 허무함으로 6,500원이 출금되었다는 체크카드 문자를 노려본다. 이 한 잔을 위해 나는 2시 50분 시외버스를 탈 때부터 커피를 참아왔었다. 아무리 노려봐도 맛있어질 리 없는 커피가 야속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남아있으니 꼴 보기 싫은 라테는 단숨에 마셔버리고 노트북을 꺼냈다. 카페에서는 조금 시끄럽다 싶을 정도의 크기로 팝송을 틀어놓았다. 일렉 기타가 지기지기징징징 쉴 틈 없이 쿵쿵거렸다. 노동요로 메탈을 들으며 타자를 쳐 본 적은 없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거 꽤 잘 써지잖아? 내 6,500원의 값어치는 커피가 아닌 작업량으로 대신하리라.
다음 곡 또 다음 곡 빠른 사운드가 채찍을 들고 있는 기수처럼 달리고 있는 내 엉덩이를 마구 내리쳤다. 영감이 떠오르고 안 떠오르고 생각할 겨를 없이 타자 위 손가락을 내달리게 만든다. 다행히도 오늘 커피 대신 글 하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