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피는 카페 사장님 눈치를 봐
왜 쿠폰을 쓴다고 말을 못 해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어 와이파이를 확인하는데, 이 카페는 비번도 없이 쿨하게 인터넷이 개방되어 있었다. 무려 5G 와이파이가! 자물쇠를 달고 있는 음침한 녀석들을 비웃듯 맨 위에서 어찌나 위풍당당해 보이던지.
평소에는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보는 게 미안해서 모바일 핫스팟을 연결해서 쓰는 편이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카페는 이제 임대업이라는 이 시대에, 그깟 와이파이 비번 좀 물어보는 게 대수냐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나란 인간은 모든 걸 배려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니까.
테이블 곳곳에 친절하게 비번이 적혀있거나 영수증 아래 쓰여있는 경우에는 마치 여기 와이파이 쓰세요 여기서 작업해도 괜찮습니다 사장님이 적극적으로 권하는 기분이 들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와이파이 비번이 적혀있지 않아서 물어봐야 하는 경우라면 꺼리게 된다. 과연 저 사장님이 생각하는 커피 한 잔 가격에는 와이파이가 값이 포함되어 있는 걸까. 생각 많은 내향형 인간은 와이파이 하나에도 고민이 많다.
같은 이유로 노트북은 항상 풀 충전이다. 충전선을 가지고 다니는 편이고 혹시 몰라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선호하긴 하지만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와이파이에 전기까지 쓰는 건 너무 하려나 또 혼자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충전이 덜 되었는지 작업하다 배터리가 없어서 곤란했는데 마음씨 좋은 사장님께서 갑자기 멀티탭을 꺼내서 연결해 주셨다. 내 자리까지 전기를 공급해 주기 위해 카페를 가로질러 길게 이어진 그 하얀 줄이 얼마나 황송하던지. 혹시나 다른 손님들 보기 안 좋을까, 멀티탭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작업하는 내내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황송해서 이제 그 카페에 갈 때는 노트북이 충전되었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되었다.
지갑에는 카페 도장 쿠폰이 수십 장 있는데 같은 것만 네다섯 개씩이다. 도장을 일찌감치 다 찍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아서 또 새로 쿠폰을 받고, 그렇게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그러고 보니 해피포인트도 잔뜩) 공짜커피 하나 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지.
오늘은 쿠폰을 써야지 마음먹고 카페에 가도 손님이 많을 때는 바쁠까 봐, 오픈 시간에는 첫 손님이라서, 요즘 경기도 어려운데 등등의 이유로 망설여진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무료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을 때 추가 요금을 내고 더 비싼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다. 700원이라도 더 내고 라테로 바꾸면 그나마 좀 덜 미안했다.
유일하게 쿠폰을 잘 쓰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쿠폰을 가게에 맡겨두고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도장이 다 채워지면 사장님이 알아서 금액을 빼주신다.
"무료 음료 한 잔 드실 수 있는데 그걸로 해드릴게요."
감사하게도 해드릴까요가 아닌 해드릴게요라서 편하다. 나는 무료 쿠폰을 쓰기 위해 눈치 볼 필요 없이 ‘네’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이것까지는 너무한가 싶지만 카페에서 사용한 휴지도 주머니에 넣어 온다. 셀프바가 있어서 휴지통이 비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다 쓴 휴지는 화장실로 가서 쓰레기 통에 버리고 쟁반을 반납하거나, 주머니나 백팩 앞주머니에 넣었다가 집에 가져오는 편이다. 케이크 생크림이 묻어서 끈적한 휴지나 코 풀고 난 젖은 휴지를 만지게 하는 건 어쩐지 미안함을 넘어 쑥스럽기까지 하다.
식당에서 반찬 리필은 거리낌 없이 하고, 처음 보는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스몰 토크도 하는 내가, 길을 헤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 오지랖을 부리는 편인데도 왜 유독 카페에서 만큼은 그렇게 신경 쓰는 게 많은 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곳이니 좋은 손님이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