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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Jul 14. 2023

오래 마음을 주었던

좋아하는 동네의 낯선 카페

아침부터 살짝 설렜다. 

온라인 미팅이 많아진 요즘, 수업이 아닌 일로 동네를 벗어나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부분 서울일 때가 많아서 아침잠이 많은 내 기준에서는 꽤 불행하다 싶을 정도로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 했다.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고단한 여정의 끝, 잠깐의 만남이 대부분인 미팅에서는 순수하게 설레하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차로 20분, 버스로 30분.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많이 걷지 않는 길이라 버스를 타기로 했다. 친구는 운전해서 편하게 가지 비 오는 날 버스냐며 고생한다 했지만, 오랜만에 시내에(시내라니 시골사람 다 됐네) 나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동네 카페를 쳇바퀴 돌듯 전전하던 일상에 새로운 카페 하나가 추가되는 데 고생일 리가.

 

게다가 오늘 가는 곳은 예전에 내 작업실이 있었던 동네다. 오래 마음을 주었던 곳. 고르고 골라 작업실로 사용할 작은 집을 마련하고, 돌밭이던 마당을 가꾸고 책상 앞에 앉아 그 마당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따뜻한 2년 치의 기억이 가득이다. 


버스 안에서 정류장을 확인하며 내릴 때를 기다리는 게, 꼭 한때 짝사랑한 사람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창회에 나가는 기분이다. 많이 변했어도, 더 세련되었어도 여전히 반가울 것이다. 서촌에서 그랬듯 나는 골목과 집, 오래된 나무가 있는 풍경에 대책 없이 마음을 주곤 하니까. 변했다고 실망하는 법은 없다.

     

버스에 올라타 이어폰을 꽂고 노래 한 곡이 흐를 즈음 메시지가 왔다.     


‘작가님~ 비가 계속 내리고 있네요ㅠㅠ 조심해서 오시고, 곧 뵙겠습니다. 혹시라도 오시기 너무 불편하시면 편히 말씀 주셔요!’     


이미 버스를 탔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내 들뜬 마음을 들키지 않게 살짝 누르고 어른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일 때문에 메시지나 메일을 보낼 때는 아직도 스스로 어른의 가면을 쓴다는 점이 매번 놀랍다. 할머니가 될 때쯤은 되어야 어른이 된 나를 순순히 인정하려나. 


창 밖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는 것도, 내려서 바지가 젖도록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 비슷한 하루의 모습을 조금 비트는 것. 그게 궂은 날씨여도 반기며 좋아하는 편이다. 새로운 카페가 추가된다면 더더욱 환영이다.

     

만남은 아트홀 2층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짧게 공간 투어를 하고, 대화 중간중간 커피를 마시며 넓은 창 밖에 비 오는 풍경을 하릴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미팅이었다. 좋은 공간에서는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고 믿는다. 게다가 나를 발견해 준 사람 앞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은 무척 주최적인 일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된다. 그래서 나를 알아보고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내 재능을 사주는 이가 더없이 고맙다. 오늘의 에너지를 기억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노를 저어야지. 다이어리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으며 작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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