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내가 읽지 않는 몇 종류의 글이 있다. 특히 남편에 대한 글은 힘들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글은 현실에서 이미 충분해서 싫고, 전혀 다른 처지의 글은 셈이 나서 싫었다. (이래저래 남편에 관한 건 다 싫은 건가.) 특히나 평범했던 삶의, 아니 조금은 우울하고 힘들었던 삶의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나의 전부 나의 사랑' 같은 류의 글은 도저히 못 읽겠다.
당신도 남편의 좋은 점 싫은 점 온갖 얘기를 쓰면서 내가 쓴 결혼 생활은 왜 읽지 않느냐 묻는다면 고개를 살짝 돌려 흘리듯이 대답하고 싶다. 쪽팔리니까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고백하자면. ‘부러워서 그래요.’
친구들과 모이면 서로의 불행을 자랑하듯 늘여놓을 때가 있다. 허무함 뿐인 빈궁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왜 만날 때마다 이런 얘기만 하냐고 탄식하지만 사실 얘기하면서 변태같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남편을 까대면 까댈수록, 내 불행을 낱낱이 고백할수록 짜릿하다.
그래, 너나 나나 별거 있냐. 나도 그랬는데 너도 마찬가지였구나. 우리는 여전히 그런 문제들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그럼에도 잘 살아보자 으쌰으쌰 술잔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불행 배틀의 목적은 서로의 불행을 전시하는 데 있지 않다. 이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다른 이의 불행을 나의 불행으로 감싸기 위해 수위를 점점 높여간다.
내가 이 배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분야는 당연히 ‘술’이다. 백전백승으로 나를 이길자가 없었다. 남편은 첫 아이의 신생아 시절부터 학부모가 된 지금까지 주 1회는 적다 싶을 정도로 회식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팀 회식에 초청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뿐만 아니라 퇴사한 회사의 회식까지 불려 나가는 대단한 사람이다. (왜 이럴 때는 사람대신 인간이라 쓰고 싶은 걸까.) 게다가 회식을 통해 해결되는 회사 일이 있으니 자신이 회식을 하는 것을 아내가 기분 나빠하지 않기까지 바라는 인간(도저히 안 되겠다)이니까.
남편이 술을 즐기지 않거나, 회식을 잘하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자신의 처지가 조금 나았음에 안도할 것이다. 친구야. 얼마나 다행이니. 그래도 네 아이들은 아빠가 없는 저녁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안 잖니. 물론 나도 친구에게 위안을 받는다. 아무리 다정하면 뭐 해. 나는 돈 버는 사람, 너는 집안일하는 사람이니 설거지를 도와주지 않겠다는데. 지금 우리가 같은 시대에 사는 게 맞니. 니가 먹은거 니가 씻는데 돕긴 뭘 도와. 청소도 너보다 잘하고, 심지어 애기도 잘 봐? 그런데 교회만큼은 꼭 같이 가야 한데? 아무리 부부여도 종교랑 정치는 건드리는 거 아니지 않니.
답이 없는 문제로 골치를 썩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각자의 문제를 하나씩 안고 살고 있다. 하나면 다행이게, 보통은 두어 개씩 배당받아 살고 있을 것이다.
남편은 여자들은 왜 그렇게 비교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싫은 소리를 하지만, 그 비교로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오늘도 회식을 하지만, 설거지는 당신의 일이라 여기고 있었음을 고마워해야 할 거야. 오늘도 외박을 하지만, 종교를 포함한 내 모든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비교하는 것이 남편들의 단점이라는 것도 고마워해야겠지.
3년 동안 공들인 신간이 나왔고, 지금까지 아내가 여섯 권의 책을 썼는데도 여태껏 축하한다 꽃 한 번 사들고 온 적이 없는 사람을 타박하지 않고 내 손목에 새긴 튤립 한 송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