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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Nov 09. 2023

팀워크

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남편과 이제야 손발이 좀 맞는다고 느낀다. 무려 결혼 11년 만이다. 아이 둘 부모로 9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다음에서야 이렇게 느끼는 것이 보는 사람에 따라 아찔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연인이나, 신혼부부라면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면 도로 물리고 싶어 질지도. 뭐, 그래도 사랑이란 우리는 그렇지 않으리라 믿고 나아가게 만드는 무모함이니까. 마법이든 환상이든 좋으니 철석같이 믿고 시작해도 좋겠다. 나 역시 그렇게 시작했고 그대들은 또 다를지 모르니.


그동안 남편이 내 배우자 역할을 조금 못하는 정도였다면 남편 역할은 낙제점 수준이었는데(그런데 낙제를 시킬 수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의외로 시부모님과 나 사이에서는 초반부터 중간 역할을 꽤나 잘하는 편이었다. 천지분간 못하고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 칭찬을 받으려고 뛰어들었던 내가 문제지. 

내가 어쩔 줄 모를 때 남편은 좋은 타이밍에 들어와 알아서 잘 끊어냈다. 그럴 때 남편의 콘셉트는 ‘철없는 아들’이었다. 그거면 다 된다고 자기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냐고 막내아들 같은 얼굴을 하고 웃었다. 때로는 부모님한테 저렇게 말한다고? 진짜 저 철없는 인간 어쩌면 좋지 놀라다가도 살면서 우리의 많은 잘잘못이 철없는 아들의 허물로 덮어지는 것을 보고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중간 역할을 못 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나는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엄마에게도 미안해서 둘 사이에서 혼자 팍팍 늙어가는 쪽이었다. 절정에 달했던 건 둘째가 태어나고 친정엄마와 함께 살았던 몇 년이다. 엄마는 산후도우미 일을 하며 봤던 무수히 많은 아빠들과 사위를 비교했다. 퇴근하자마자 와이셔츠를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하더라, 아무리 늦게 와도 집안 청소를 싹 해놓고 자더라. 요즘 회사는 회식도 안 하더라. 요즘 그 정도 안 하는 아빠가 어디 있냐. 우리 딸만 고생이지. 모두 맞는 소리였지만 맞장구치며 함께 남편을 까내리지 못하는 나는 속이 탔다. 참다 참다 내 안에 인내심이 모두 사라져 겨우 한 마디 했던 게 전부였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 힘들어. 알고 있으니까 이혼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하지 마요. 열 번 할 거 참았다 한 번만 해.' 내 딴에는 엄마가 상처받을 까봐 조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용기 낸 거였는데 엄마에게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아주 가끔 사위 흉을 볼 때면 내 눈치를 보며 네가 하도 하지 말래서 열 번 아니고 백 번 참다가 하는 거라는 얘기를 덧붙이신다.


내 부모와 사위 사이, 남편의 부모와 내 사이에는 지난 11년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 한쪽이 애쓰는 일 없이 이제는 어느 정도 격 없이 가까워졌으며 또 필요한 만큼 멀어진 사이다. 이제는 아주 깊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 같은 건 없다. (나이 50이 되어 쓰는 글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책의 계절답게 올 가을은 책 관련 행사로 주말마다 전국을 쏘다니느라 바빴다. 더군다나 신간을 선보이는 자리라 부담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페어에 나가있는 동안 내 자리를 비운 동안만 바빴겠나, 그걸 준비하는 평일에도 육아와 살림부터 모든 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좁은 우리 집 거실은 영행용 캐리어와 박스, 엽서와 스티커, 봉투 같은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그럴 때마다 소홀한 엄마 역할에 속상해서 잠들기 전 눈물을 훔치기 바빴는데 아이도 나도 이제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바쁜 엄마로 사는 이 계절을 보내느라 단풍놀이 한 번 가지 못했던 것이 (여전히 안타깝지만) 자는 아이 발등에 입을 맞추고 미안해할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아이들도 더 이상 주말마다 떨어져 있어야 하는 엄마를 찾아 계속 전화를 걸고 언제 오냐 찾던 아가들이 아니다. 저녁에 만나면 찐하게 포옹해 주며 엄마의 매출 금액을 궁금해하는 뭘 좀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없는 사이 먹을 것 입을 것 갈만한 곳들 다 정해주어도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되던 남편도 이제는 척척 나 없는 자리를 메꾼다. 페어가 열리는 근처 놀만한 곳을 찾아 두고 아이와 가기 좋은 식당과 쉴 곳을 체크한다. 이제 하루 이틀정도 내가 없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게 되었다. 

철없는 막내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담. 아기 같던 우리 아이들은 언제 또 이렇게 컸담. 갓난쟁이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던 나만 제자리에 머물지 않도록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합이 잘 맞는다는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오늘 저녁 회식을 한다고 알려왔다. 먼 거리기 때문에 회식하는 날은 곧 합법적 외박이라는 의미. 요 며칠 아주 성실히 애쓴 게 바로 오늘을 위한 큰 그림이었나. 어쩐지 요즘 좀 잘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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