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월요일이었던 결혼기념일은 숙취로 날려버리고, 그래도 기념일이었으니 1년 한 번 쉼표를 찍듯 12년의 결혼생활에 대해 짧게나마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는 것으로 10주년을 나름 거창하게 보내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보자던 결심과 다르게 작년 결혼기념일은 도저히 웃으며 나란히 서있을 자신이 없었던 11주년이었다. 덕분에 해마다 가족사진을 찍어왔던 그간의 전통을 깼고, 10년 간 빠짐없이 찍어온 가족사진에 대한 열정도 이 빠지듯 구멍이 뚫리고 나니 시들해졌다.
그래서 올 해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어정쩡한 상태. 하는 수 없이 앞으로는 5년이나 10년에 한 번 가족사진을 찍는 걸로 어물쩍 계획을 변경했다. 카메라 앞에 서있는 내가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기 때문이거나, 사진만 찍자면 얼빠진 표정을 짓기 시작한 첫째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결혼기념일마다 가족사진을 찍던 우리의 전통은 작년 부로 막을 내렸다.
평범한 결혼기념일을 앞둔 주말은 여느 때와 비슷했다. 사진관에 가거나, 아이들을 맡기고 데이트를 하는 로맨틱한 계획도 없는, 그저 '결혼기념일이니까'라는 핑계로 외식과 배달을 마음껏 하자는 정도의 예외만 허락된 날.
토요일은 김비서가 좋아하는 피자집에 가고, 일요일에는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으러 가고, 저녁에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치킨을 시켰다. 그리고 김치냉장고에 들어있던 와인과 소주 꺼내 시작된 부부의 술자리.
대단한 기념일 만찬은 아니어도 만 원짜리 와인 한 병과 한라산 한 병으로도 즐거울 수 있어 다행이지 않나 기분이 좀 좋아졌다. 티브이 속 멕시코를 보며 언젠가 함께 저 알록달록한 골목을 걸으며 타코도 먹고 데낄라도 마시길, 그러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워볼까 헛소리로 그칠 꿈을 함께 꾸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살이 스치는 것도 끔찍한 날들도 분명 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나름 결혼기념일이라고 조금 들떴나 보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운 뒤 맥주를 더 꺼내서는 안 됐는데. 제주 에일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아주 가끔 마흔이 다 된 나이를 잊고 한창때 주량을 기준 삼아 기분을 낼 때가 있는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12년 차 부부의 끈끈함을 확인 한 건 그날 새벽이었다. 아이들과 자러 들어갔던 나는 김비서를 호출했다.(기억나지 않지만 불러서 데리고 나가라고 했단다.) 변기통을 붙잡고 토하고 거실에 드러누웠다가 또 토하러 갔던 장면만 컷컷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취할 때까지 마시는 건 대학생 때나 하는 거 아니냐고 당신 나이가 몇이냐고 언젠가 내가 김비서에게 한소리 했었는데. 심지어 토하지도 않고 얌전히 잠들어 멀쩡히 출근한 사람에게 그때 너무 매몰차게 굴었네 뒤늦게 낯 뜨거워졌다.
김비서는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토하고 있는 내 엉덩이에 발받침 정도 높이의 아기 의자를 받쳐 주었다. 내 상태를 보아하니 다음 날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생각에 6시 반에 출근하는 사람이 새벽 2시부터 설거지를 했단다. 그래 이런 게 사랑이었지. 토할 때 머리카락을 잡아주는 게 우정이라면 사랑은 편하게 토라고 의자를 받쳐주고 설거지를 하러 가는 거겠지.
변기통을 붙잡고 깔끔한 싱크대를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했다면 이상하려나. 그런데 다음날 정신이 들어서야 그날 내가 토하고 나서 냅다 키스를 날렸던 중간 단계에 이를 닦는 배려를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런 진상.
아주 가끔 나는 김비서가 옆에 있을 때 아무 걱정 없이 취한다. 만취할 정도로 마음 놓고 마시느냐 아니냐는 김비서의 유무에 달려있다. 그래서 친구와 있을 때는 사케 두 병을 비워도 말짱히 집으로 돌아와도, 가끔씩 울고 토하고 발가벗고 달려드는 온갖 진상짓은 오직 김비서에게만(바라지 않을 테지만) 한다.
김비서는 나에게 남편, 애들 아빠, 가장이기 전에 가장 만만한 사람이다. 내가 만만하게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거나,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너무 편해서 만만해진 사람. 그런 사람은 지구를 통틀어 김비서 하나뿐이다.
격 없이 편한 아주 오래된 친구 앞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아주 골치 아픈 성격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낳아 기른 엄마 앞에서 조차 좋은 딸이 되고자 약간의 거리를 둔다. 아이들 앞에서 이성과 감정을 컨트롤하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함은 물론이다. 멀거나 가까운 사람 모두에게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고 싶고, 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산다.
어쩌다 보니 아무도 지워준 적 없는 타고난 책임이 무거워서 ‘나만 생각하고 살기’가 가장 어려운 어른으로 자랐다. 점을 보러 갔을 때 첫마디로 ‘책임감이 많네’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 그게 바로 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싫지는 않다. 나를 갈아 넣어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오히려 만족하고 있다. 다만 좀 버거울 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살다가 살다가 김비서라는 섬에 가서 종종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로 쉰다. 그 섬이 너무 엉망이거나 좁거나 볼품없어도 결혼 한 이후 내가 가장 편히 누워 쉴 곳은 여기였다.
때로는 내 모든 짐을 그 섬에 던져놓고 혼자 바다로 뛰어들기도 하고, 쓰레기통처럼 버릴 때도, 잘 처리해 달라 모셔놓을 때도 있었다.
나는 매 순간 김비서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아주 가끔, 살면서 몇 번 김비서에게 모든 걸 맡기고 멍청한 인간으로 무너질 때가 있다. 그때만큼은 보잘것없고 나약한 원래의 내가 된다. 그러면 김비서는 지금껏 당신을 탓하던 나를 원망하지 않는 무거운 입으로, 말로, 존재로 나를 되살린다.
나의 부족함과 그의 부족함을 서로 채워가며 살기로 한 것이 우리의 결혼 생활 같다. 우리는 미안한 것도 고마운 것도 빚으로 쌓아두지 않는다. 서로에게 빚지는 것이 없다는 게 얼마나 내 숨통을 틔우는지 아마 김비서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김비서 앞에서 만큼은 비로소 가장 편안한 내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면 생색내지 않을 위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