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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Oct 25. 2023

주말부부 끝

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오피스텔을 정리하려고 생각했을 즈음,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남편의 뉘앙스가 이상했다. 우리가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한다.'나 '이사를 가고 싶다.'가 아니라 '이사를 갈 거다.'라고 기정사실을 통보하듯 말했다. 마트에 장 보러 다녀오겠다는 듯 일상적인 말투로, 단호하지는 않았지만 문장의 끝에는 논의가 아닌 통보의 의미가 엿보었다. 


집을 옮기는 것이 그렇게 쉬웠었나. 그렇다면 내가 여기로 내려와 적응하기 위해 울고불고, 때로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밤거리를 배회하던 그 수만은 날들은 무얼 위해 버틴 거였나. 당장 이사를 갈 상황도 아니었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순순히 이사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부탁하고 사정해도 모자랄 판에 방법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이사가 그렇게 쉬웠더라면 내가 힘들 때 당신은 왜 서울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나 따져 묻고 싶었다. 아마도 남편은 돈이 가장 큰 문제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때는 나도 그걸 알았기에 참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내 정신 상태보다 현실이 더 무서웠으니까. 


다행히 집값이 내려 이제 남편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는 게 가능해졌으니 하는 소리라고, '현실'이 그렇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저 이성적인 말에도 나는 끝끝내 순순히 동의하지 않았다.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고 곧 둘째도 학교에 입학하는 데 두 아이가 전학을 가야 하는 문제를 그리 쉽게 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제야 겨우 적응해서 살고 있는데 서울도 아닌, 경기도로 또다시 내가 선택하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니. 미안하지만 나는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두드려 보지 않은 다리를 딛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도 얕게 뿌리를 내리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당장 이사를 갈 상황도 아니었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에 순순히 이사를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핑계야 많았다. 우리가 회사 근처로 다 같이 이사를 간다고 해도, 남편이 다시 다른 곳으로 발령 나지 않을 확률이 100%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회사 근처로 간다고 해도, 남편이 좋아하던 회식을 딱 끊고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올 확률도 높지 않았다.(0%에 가깝다.) 그러니 더더욱 나는 남편과의 넉넉하지 않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이곳에서 내린 뿌리를 거둬드릴 엄두가 안 났다. 무엇보다, 서울과 조금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간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주저앉힐 것 같았다. 지하철 타고 다닐 수 있잖아. 이 정도면 서울 다닐만하지.  내 발목을 잡고 뭉그적거릴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비서의 생활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종종 회식을 하고, 직원 집에서 자든, 술을 마시지 않는 동네 직원의 차를 얻어 타고 밤늦게 온다. 자연스레 나도 다시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원래 있던 사람이 돌아왔다기보다, 평화로운 내 삶에 던져진 돌멩이 같달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럴 거면 왜 들어온 건지 묻고 싶었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돌아온 게 아니라면 차라리 혼자 있으면서 자기 계발이나 했으면 했다. 먼 미래를 위해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영어학원을 다니든, 헬스장을 다니든, 그마저도 아니면 언제 또 혼자 살아보랴 회식이나 신나게 하든. 왜 자유를 뿌리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를 일이다.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라고 하기엔 집에 너무 늦게 오거나, 와서도 핸드폰만 보던데.


한때는 나 역시 가족이라면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다면, 누군가 저희 주말부부예요라고 했을 때 '가족은 그래도 같이 있어야 되는데.'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살게 되면서 나는 다시 저녁마다 오늘은 몇 시에 오는지 저녁은 먹고 오는지 묻게 되었다. 회식을 하면 몇 시쯤 오는지, 아이들이 자기 전에 오는지, 재울 시간에 들어와 자는 시간이 다시 또 30분이 늦어지지는 않을지 신경 쓰게 되었다. 반면에 나는 다시 마음속 긴장을 조금 풀었다. 이제 아프면 기어코 일어나지 말고 좀 쉬어도 될 것 같았다. 아이가 열이나도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힘들면 밤에 설거지를 쌓아놓고 자도 되고, 음식물 쓰레기는 아침에 남편이 버려줄 것이다. 2중 3중으로 단속하던 현관문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은 수시로 요동친다. 며칠 전만 해도 역시 넷이 되니 좋다고 했다가 언제는 애들 조금 크면 해외로 나가서 기러기를 만들어 버려야겠다 결심했었다. 감정의 폭이 이렇게 널뛰는 이유는 역시 주말부부가 끝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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