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희정 Aug 02. 2023

이게 다 술 때문이야

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우리 부부의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

간헐적 단식으로 저녁을 안 먹은 지 두 달 정도 되어서 나도 모르게 살이 좀 빠져있었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근육량을 6kg 늘리라는 진단이 나왔다. 매일 걷는 것 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겠지. 나이 들수록 근력운동이 중요하다는 데 어떤 것을 시작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나보다 한참이나 길었던 김비서의 결과지였다.


대부분의 내용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하거나 요양을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추적 관찰과 검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방간 신장 콜레스테롤 수치 옆 모든 숫자들이 지금 당장 운동과 금주를 하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내가 느끼기에 결과지의 문장들은 꽤나 단호했다. 줄이는 것이 좋겠다던가 적절한 운동을 권한다 수준이 아니라 금주와 확실한 운동의 필요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나는 섬뜩했으나 김비서는 결과지를 받은 다음에도 얼마 안 있어 회식을 했다. 긴 말 하지 않겠다고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할 때라고 싫은 소리를 했던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시부모님께 사진을 찍어 보내 내 입으로는 더 꺼내고 싶지 않은 걱정과 염려와 한탄과 원망을 대신하도록 양보할까 하다 말았다. 그런들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가정을 돌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을까. 마음은 있으나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많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이 내 남편이니 문제지.


이 사람의 건강 관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생각하다 건강을 지키는 것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그건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론은 엉뚱하게도 '아이들에게 수영을 꾸준히 가르치겠다'에 다다랐다. 김비서가 운동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란 것은 운동을 배우지 않아서 일 수도 있으니. 나는 아이들에게 몸 쓰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두 아이에게 꾸준히 수영을 가르치고 큰 아이는 농구를, 작은 아이는 자전거를 계속 배우게 해야지. 시어머니의 아들은 함께 산에 가자거나 산책을 가자고 해도 꼼짝하지 않으니 별 수 없다. 일단 내 아들부터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하는 수밖에.

      

예전에 티브이에서 별이 하하와 결혼한 이유를 얘기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하하는 자기 삶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자기가 하하의 가족이 되어 그의 삶 속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거였다. 삶에 대한 애착과 자기애가 결혼 상대를 고르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나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은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꽤나 인상 깊었는지 살면서 가끔 생각난다. 특히 김비서가 자신을 돌보지 않을 때. 그런 것이 꽤나 중요했구나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웃기는 건 자신을 지나치게 돌보는 사람은 끝끝내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해서 가족은 후순위가 되는 경우도 많이 봤다는 거다. 적정 수준을 지키기란 이렇게 어렵다.     


김비서가 몇 시간씩 헬스를 하고, 달리기 크루에 들어가 마라톤을 준비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 내 삶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랐다. 그나저나 한 번쯤은 건실한 삶의 가치를 먼저 좀 깨닫고 나에게 전해줄 수는 없는 걸까.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이나 건강해야 하는 이유 같은 당연하고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쪽은 왜 매번 나인지 의문이다.


김비서와 오래오래 건강하게 술 한 잔 기울이며 늙고 싶다. 아플 땐 서로에게 기대고 고민을 나누며 살고 싶다. 게다가 우리는 어깨에 두 아이의 삶을 나란히 짊어지고 있으니 이미 기울어진 우리의 2인 3각 달리기에서 누군가 중도하차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언젠가 나 혹은 김비서가 서로의 어깨에 올라타게 될지 모를 일이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사고는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 부부니까 우리는 또 기꺼이 서로를 짊어질 거다. 다만 그 이유가 술과 게으름 때문이 아니길 빌 따름이다.

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외로움과 분노 중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입 밖으로 꺼내기 전부터 지겨워서 멀미가 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놀이터에는 엄마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