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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Jul 19. 2023

주말 놀이터에는 엄마가 없다

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줄넘기 조금 뛰다가 땀을 뻘뻘 흘리고 벤치에 앉아 입운동만 하는 아이에게 그럴 거면 들어가라고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앉아만 있으면 뭐 하러 나왔냐고. 아이에게 화를 낼 만한 건 아니었다. 사실 잠시 앉아 쉬는 아이가 아니라, 주말에도 집에서 누워만 있는 김비서를 향한 말이었다.      


아이에게 화가 날 때 상당히 많은 이유가 사실은 김비서를 닮은 모습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후 친구 J가 생각났다. 이혼한 남편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아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고 했던 그 친구의 말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그 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고, 아들이 아빠를 닮는 건 당연한 거니까. 아주 부당하고 슬픈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을 때였다.    

 

엄마가 자식에게서 배우자의 못마땅한 부분을 발견하고 화를 내는 건 여전히 무척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아마 지금 J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너머 고통을 보려고 할 것이다. 비뚤어진 미움과 원망 안에 짓물러 터진 상처를. 그때 그 친구는 내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말 놀이터는 한가한 편이다. 다들 여행이라도 갔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던 탓인지 모르지만 오늘은 유독 더 조용했다. 미끄럼틀 옆에는 혼자 줄넘기를 하는 여자아이와 벤치에는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혼자 그네를 타다가 심심해지면 다시 줄넘기를 하다가 아빠 옆에 앉아 물을 마시고 좀 쉬다 다시 논다.      

애 엄마가 집에서 핸드폰만 하지 말고 데리고 좀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을까. 그렇게라도 아이와 나와 시간을 보내니까 나쁜 아빠는 아니네, 혼자 상상했다.


주말은 마트나 놀이터 어디든 엄마가 없다. 아이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나와 자전거를 타고, 농구를 하고, 산에 간다. 주말에 아이와 보낼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던 아빠와, 억지로라도 집 밖으로 내보낸 엄마가 있는 집일 것이다.

우리 집은 애석하게도 두 가지 다 해당되지 않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을, 그 버거운 행복의 의무를 모르는 사람에게 억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줄넘기 대결을 한참 하고, 엄마는 좀 쉬겠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같이 줄넘기를 하던 여자아이도 아빠에게 와서 무릎 사이를 파고든다. 무릎에 앉아 몇 마디 나누는 부녀의 대화를 듣고 한눈에 다정한 아빠라는 걸 알았다. 아이에게 건네는 한 톤 높은 목소리와 핸드폰에서 멀어진 시선은 많은 걸 말해준다. 초등학교 3, 4학년은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아빠와 착 붙어 있다는 것 역시 그 부녀의 유대관계를 보여줬다.     


나는 그런 사소한 장면들에 종종 서글퍼진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놀던 아이에게 머리끈을 가지고 다가가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 아빠일 때.

과자를 집어먹다가 손에 지지가 묻었다고 아이가 찾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 아빠일 때.

아빠의 빈자리에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이 집에 있는 아빠에게는 묻지도 않고 나에게만 놀이터에 가자고 할 때.

그러면 또 김비서는 함께 나가자는 소리 없이 티브이를 켜고 눕는 일상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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