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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Jul 17. 2023

생활비 200만 원

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 생활비를 200만 원 안에서 썼으면 좋겠어.

- 애들 교육비 포함이야?

- 응.    

 

미션이 떨어지면 나는 성실히 수행하려고 애쓴다. 우리 집 경제부장관은 김비서이므로. 생활비의 대부분을 버는 것도, 대출을 받을 때 사인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이니까 까라면 깐다. 그게 스스로 골치 아픈 숫자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돈 문제만큼은 완전히 김비서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다.(주변에서 그러면 큰일 난다, 이혼하면 거지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그가 쓰고 있는 생활비를 제외하고, 우리 셋 한 달 200만 원으로 못 살 것도 없다. 조금 더 아낀다면 성공할 수 있는 미션이다. 대신 아이들에게 하기 싫어도 돈 이야기를 좀 하게 되겠지. 맨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순 없어, 방학 때 수영 특강을 들을 수 있을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등등. 그리고 나는 문득문득 조금씩 덜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은 다양하지만 그 줄기는 몸과 마음의 여유를 자양분 삼아 자라나더라는 것을 여유를 잃고 나서 배웠다.      


김비서의 플랜이 우리 가정이 처한 현 상황에서 최적일 것이다. 심지어 그는 개인적인 소비라고는 면도기 사는 것 말고는 없을 정도로 돈을 쓰지 않는다.(그래서 애초에 용돈 같은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생활비를 아끼라니 심보가 고약해진다. 언제 펑펑 쓴 적도 없었던 돈이었다. 알았다면서도 흘리는 말로 우리 셋 생활비가 한 달 고정으로 나가는 보험비와 맞먹는다고 한 마디 거들었다. 왜 일을 이지경으로 끌고 왔냐고 할퀴어보지만 애초에 가정 경제에 무관심했던 사람의 핀잔은 힘이 없다. 김비서가 한 달 대출비를 들먹이며 애초에 장인어른이랑 일 하는 게 아니었다고 얘기한다면 나도 할 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주고받아 뱃속에 멍이 퍼렇다.     


200만 원에서 우주와 하나 교육비를 제외하면 1501,000원이 남는다. 그걸 4주로 나누면 375,250원 하루에 53,607원 꼴이다. 단순히 돈을 덜 쓰려고 가계부를 쓰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건당으로 계산하는 택배 기사가 되어 모든 기준이 53,607원에 맞춰졌다. 주말에 직원이 고기를 구워주는 고깃집에서 넷이 배부르게 먹으면 이틀 치 생활비가 나간다. 그러면 그 어느 날엔가 이틀은 무지출로 살아야 한다는 소리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게 생겨도 치킨은 한 마리, 피자도 한 판으로 바뀌었다. 배달을 시킬 때도 내 몫의 밥을 따로 차려야 한다는 소리다. 청소포를 쿠팡에서 사면 200매에 11,800원이지만 다이소에서 사면 30매에 1,000원이다. 일상의 모든 면에서 당장 나가는 지출을 줄이는 게 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었다.

     

장바구니에 넣어 놓은 옷 목록을 본다.

카라 엠보 체크 블라우스 39,800원

스트라이프 숏 티 23,500원

스트라이프 노치드 셔츠 43,000원

앤 스트라이프 원피스 46,500원

와이 린넨 셔츠 52,800원

장바구니에 있는 걸 다 담으면 205,600원이다. 4일 치 생활비. 덜컥 살 수 없으니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까 김비서에게 넌지시 카톡을 보낸다. 혹여나, 만에 하나, 그럴 일 없겠지만, 당신 수업도 나가야 하는데 변변찮은 옷도 없으니 그 정도는 사라고 할까 봐.


- 옷 좀 사고 싶은데 하루 5만 원으로는 못 사. 그럼 나 이제 평생 옷 못 사는 건가.

- 평생 이러고 살 건 아니니까 잠깐만 참아줘요.

- 대략 언제까지인데?

- 그건 알 수 없지만 지금이 제일 어려운 시기인 건 분명하니까.    

   

에라이. 11년을 살고도 아직도 김비서를 모르니 이 여자야. 남편에게 간절기에 입을 얇은 패딩이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조금 더 춥거나 더 덥게 살면 되는 거라던 명언을 남겼던 사람에게 내가 또 한 번 헛된 기대를 걸었었다.(돈을 아껴야 할 때마다 저 말을 떠올린다.)      


그래도 옷은 샀다. 이번 주에 54,211원을 남겼으니 52,800원짜리 셔츠 하나를 살까 하다 그러기엔 배송비 3천 원이 또 너무 아까워서, 네모난 체크 박스에서 셔츠를 담았다 원피스를 담았다 티셔츠를 뺐다가 반복하면서 두 벌을 사고도 괜찮은 금액이 나오는 구성을 조합하다 울컥 억울해져 버렸다. 지금 입고 있는 원피스도 7년째다. 어차피 사면 10년을 입을 텐데 결제하자. 원피스와 셔츠 89,500원에 쿠폰 2,000원을 써서 결제했다. 쓰는 것도 나 아끼는 것도 나라면 오늘의 소비를 내일의 내가 무지출로 막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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