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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Oct 26. 2024

프랑스에서 샤넬백을 사준다더니

시어머니도 있고 시누이도 있는 명품백

  

시누이에게 연락할 것이 있어서 카톡을 열었는데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야자수 나무 뒤로 바다가 보였고 시조카들은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에서 즐거워 보이는 사진.

올해도 휴양지에 갔구나.

매년 휴양지로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것을 카톡 사진으로 봐와서 알고는 있었다.

방학이라 조카아이들과 함께 서울에서 놀만한 곳을 찾아 결제하려던 차에 뭔가 허무해졌다. 내가 누굴 챙길 형편이던가.


결제 버튼 대신 카톡 창을 열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언니 카톡 보니까 올해도 해외 다녀왔나 보네. 우리 애들은 아직 여권도 없는데. 애들 방학에 다 같이 놀면 좋을 것 같아서 지금 뭐 결제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누가 누굴 챙기나 싶다. 그냥 안 하려고.

-우리도 땅 팔리면 휴양지 가자.

-(아- 그놈의 땅.) 결혼하기 전에 당신이 프랑스 가서 샤넬백을 사주겠다고 했던 얘기같이 들리는군.

-ㅎㅎ

히읗히읗 두 번으로 끝내 버리는 걸 보니 남편도 내공이 많이 늘었다. 어이가 없어서 나도 웃어넘겨버렸다.

프랑스에 가서 샤넬백을 사주겠다는 건 결혼 준비하며 남편이 한 말이었다. 남들은 이때다 싶어 명품백을 하나씩 장만하던데 나만 없다 푸념했을 때였다. 제 딴에는 프랑스에 가면 명품이 싸다더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왕복 항공권 생각은 안 하나 보다. 숙소는! 여행 경비는!

나는 또 그 말을 믿고 언젠가 프랑스에 가리라 단꿈을 꿨었다.(퍽이나) 하기야 그때는 그런 허황된 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순수의 시대 아닌가. 결혼이 마치 소꿉놀이라도 되는 듯 들떠서 나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을 때였다.


잘하면 잘해줄 거라 생각했고.

분에 넘치게 잘하고 싶었다.

시가에서 다 같이 만난 어느 날은 작은 핸드백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시누이를 보고 남편에게 속삭였다.

‘언니 백 처음 보는 거네. 저것도 명품이야.’

‘그런 게 보여?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고 말고를 떠나서... 말을 말자.’

입을 꾹 다물고 경멸의 눈빛을 보내던 남편에 대한 묘사는 그만두기로 하자.


시누이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 명품백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매번 아니꼬운 눈으로 시누이의 명품백을 걸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물욕은 평소 나와는 거리가 먼 욕망이고 우리는 사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니까. 그런데 결혼하고 살아보니 나보다 딱 1년 전에 결혼한 시누이의 면면이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 보였다. 시가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아이들이 비싼 학원을 여러 개 다니는 것이, 서울에 아파트가 있는 것이, 명품백이 늘어나는 것이, 때때로 괴로웠다.

특히나 내게 명품백은 결혼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결혼할 때 나는 백 두 개를 샀다. 시어머니 것과 시이모님 것. 생전 결제해 본 적 없는 큰 금액이었고, 백화점 명품관도 그때 처음 가보는 거였다. 남편은 서울에 있는 시이모님 댁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그때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는 제2의 엄마쯤 되는 사이 같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보니 그저 조금 가까운 친척 중 하나였고, 평소 아이들 내복이나 장난감을 보내올 정도의 왕래조차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생각보다 뜨뜨미지근한 시이모님과 남편의 관계는 결혼 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수많은 사건중 하나였다.


설사 제2의 엄마 같은 사이였다 한들 내가 무슨 오지랖으로 명품백을 사다 받쳤을까 모를 일이다.

아니, 사실은 알지.

그때 친정엄마와 나는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잘하고 싶었다.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들었다는 방짜유기 반상기에, 여름에 결혼하는 우리가 겨울 이불까지 해가는 것을 보고 예단 집에서는 의사 사위에게 시집보내냐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돌아올 거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물건으로 돌려받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랑받고 귀하게 대접받는 며느리가 되리라는 기대. 적어도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날 혼자 주방에서 울며 설거지를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일할 사람으로 불릴거라 짐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혼 이후로 우리 친정의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졌으니 그건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과소비였던 셈이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차리리 그 돈으로 엄마랑 나랑 번듯한 백 하나씩 마련할 것을 후회한다. 그랬다면 여태껏 명품백이 내 불행의 씨앗처럼 느껴질 일도 없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시가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랬다. 지나치게 노력하고 애쓰다 결국은 돌아오지 않을 짝사랑이었다는 걸 알고 허무해진다.


처음 명품백을 의식하게 된 건 시누이의 첫 아이 돌잔치 날이었다. 온 가족이 서울에 있는 한정식 집에 모였다. 시어머니는 내가 사드린 구찌를 들고 오셨고, 시누이도 결혼할 때 받았다는 샤넬을 들고 왔다. 거기 모인 여자들이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 뒤로 각자 결혼할 때 받은 귀하고 비싼 가방을 하나씩 놓을 때, 나는 뭐였더라.... MCM이었나 루이까또즈였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명품백은 브랜드나 금액 따위로 가치를 매기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건 인정이고 고마움이었다. 그래서 갖고 싶다기보다 받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내가 보였던 정성과 노력에 대한 응답으로. 말로만 그치지 않는 과분한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할 여자의 허영심이라 면박 주지 말고, 그게 그렇게 아팠다면 한 번쯤 자신의 적정선을 넘어가 주는 마음 말이다.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류준열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나는 친정 부모님을 보며 종종 그 대사를 떠올린다. 아이들과 친정에 가면 친정 부모님은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과자를 찬장 가득 넣어놓고 요구르트며 주스를 냉장고에 채워놓으신다. 이미 먹을거리가 많은데도 둘째가 뜬금없이 지난번에 할아버지가 사 왔던 식혜가 먹고 싶다면 아빠는 차를 몰고 나가 전통시장에 다녀오신다. 나도 비싸서 사지 못하는 백화점 아동복 브랜드의 원피스를 엄마 아빠는 코로나 지원금 받은 것을 털어 사놓으실 정도다. 길 가다가 보이는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머리핀이나 간식도 아이들의 눈길이 오래 머물면 아주 쉽게 손에 쥐어주신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아빠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엄마는 공공근로로 생활비를 벌고 있는 두 노인네의 생활비야 뻔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 아빠가 보여주는 사랑은 결국에는 돈으로 보여졌다. 그럴 때마다 그동안 내가 고맙고 서운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다 돈이었구나,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구나 깨닫는다.


살다가 문득, 친구 누가, 지인 누군가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명품백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묻고 싶어 진다. 루이비통이 하도 흔해서 개나 소나 다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것을 내 아내, 내 며느리만 없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지. 시누이가 시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며느리의 없는 살림은 걱정되지 않는지.

영어 학원 좀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느 집 손주와 비교하는 시어머니에게 영어 학원비가 22만 원이나 한다고 콕 집어 금액을 말 한 건 그런 비뚤어진 마음에서였다. 어머니 회사에서 공짜로 나왔다는 신라 호텔 숙박권은 왜 우리에게 쓰라고 한 번도 권한 적이 없는지. 당신들은 해외여행을 다녀오시며 왜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클 때까지 어디 다닐 생각 말라고 하시는지 가끔은 따져 묻고 싶어 진다.


이런 내가 너무 쓰레기 같아서 남편에게도 꺼내본 적이 없는 물음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차마 하지 못한 얘기는 오늘도 글로 남아 엉뚱한 사람에게 보내진다.



돈이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한테 돈을 제일 많이 쓴 사람이 아닐까 하는 그런 나쁜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돈이 있었다면 아마도 모두 나에게 주었을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돈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완전히 잘못 돼버린 걸까요?
저는 여전히 아직도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이란 무엇일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저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제게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일 거란 오래된 생각을 습관처럼 또 하게 됩니다.
인간실격 中


*메일리 뉴스레터 '마흔 일기'로 발행한 글입니다.

https://maily.so/moonzakka/posts/7f2289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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