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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Oct 26. 2024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남편이라는 인간은

결혼 절망편

  

며칠 전 친정에 갔을 때 몸이 안 좋다는 딸내미가 걱정된 아빠는 손수 짜장면과 짬뽕을 포장해서 테이블에 놓고 나가셨다. 아이들이 짜장면 먹고 싶다는데 아침을 늦게 먹어서 지금은 생각 없다고 전화로 아마 다섯 번은 얘기했을 텐데도 짜장면은 어김없이 내 눈앞에 놓여있었다. 짜장면이 다 소화되기도 전에 아빠는 우리 딸 좋아하는 회 먹으라며 홍어를 사 오셨고, 다른 손에는 뽀얀 다리를 얌전하게 꼬고 있는 닭백숙도 있었다.


아니 무슨 동네 잔치하나. 기운 없어서 누워 있고 싶은 사람한테 자꾸 식탁에 앉으라니, 식탁 위에 쌓이는 음식들이 부성애 가득한 보양식이 아니라 상하기 전에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버겁게 느껴졌다. 사 온 사람 성의를 봐서 꾸역꾸역 먹은 것들은 끝내 피와 살이 되지 못하고 병이 되었다. 집에 있던 활명수 한 병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와도 속은 그대로였다. 차라리 토해버리고 싶어서 헛구역질을 해봤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점점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져서 해열제를 하나 털어 넣고 침대에 누웠다. 이마에는 시크릿 쥬쥬가 그려진 아이의 해열 패치를 붙이고 38.9라는 온도계 숫자를 마지막 기억으로 까무룩 잠들었다.


내 엄마의 남편은 이렇게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이라도 당신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면 어떻게든 주고야 마는, 그 대단한 고집으로 평생에 걸쳐 일군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쓰라린 경험이 있는 사람. 애쓰고 노력은 하는데 그 방향이 전혀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 차마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못하겠는 부류의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빵 좋아하는 딸 먹으라며 봉투를 여는데 크림빵, 치즈빵같이 온통 당신이 좋아하고 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만 나왔다. 딸이 회라면 환장을 하지만 홍어는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다. 여전했다. 아빠는.


엄마의 남편에게 ‘적당히’가 없다면 내 남편은 ‘배려나 희생’ 같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배우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사랑보다 배려가 먼저 아닌가 싶지만 어쩌겠나, 내 나름대로 신중하게 뽑은 제비의 결과가 이 모양인 것을. 남편은 마치 아크 원자로 없는 아이언 맨 같았다.


태어나 처음 급체가 이렇게 괴롭구나 몸소 체험하며 끙끙 앓고 있는 나에게 아파서 어쩌냐 혼자 먹어 미안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거실에서 홍어에 소주 한 병을 꺼내 드는 사람이 내 남편이었다. 안방 문 너머로 남편의 맛있다 맛있다 소리가 들려올 때 이 글을 쓰겠거니 어렴풋이 짐작했다. 남편의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게 처먹는 걸로 보일 때, 자는 것도 꼴 보기 싫을 때는 기도하거나 글을 쓰거나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하니까.


인스타그램에서 릴스를 넘기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골프 치고 여행 다니며 살다 지옥 갔을 거라고 얘기하는 노부인의 짧은 영상을 본 적 있다. 댓글에 남편이 내 십자가라는 말이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종교 채널이었던 것 같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그 영상이 떴는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노부인의 심정은 알 것 같았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남편과 여행 다니며 살다 지옥 가는 편을 택하겠지만, 노부인이 하느님을 찾듯 나는 글을 쓰며 지금의 생을 버텨볼 수밖에.


여전히 앓고 있는 나에게 10살 먹은 아들은 보드게임을 하자고 조르고, 포켓몬스터를 그려달라 부탁하는데, 오로지 7살 된 내 딸만이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어디서 찾았는지 얼음주머니에 차가운 물을 넣어 머리 위에 올려주고, 만화 속 마법의 물약이 있다면 엄마를 살릴 수 있을 텐데(엄마가 체한 거지 죽는 건 아니야) 안타까워했다. 쳐진 눈꼬리로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딸아이의 눈에는 진심으로 나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갸륵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아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엄마 배고파요’였고 딸은 ‘엄마 배 안 아파요?’였다. 남자들은 어째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유전자’ 같은 것을 타고나는 것인지. XY 염색체에는 아직 인류가 풀지 못한 무슨 비밀이 있는 건지. 그것 역시 유명한 과학자들이 대부분 그 염색체를 갖고 있는 놈들이라 쉬쉬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내 아버지와 내 동생과 내 남편과 내 아들을 겪어본 봐, 내 엄마와 내 여자 친구들과 내 딸이 주는 공감과 위로 배려와 희생에는 확실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건 그 사람의 성실성 인간성 감수성 사람 됨됨이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친정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도 여전히 골골거리고 있으니 이제야 남편이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낸다. 안방에 누워있는 사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오고, 설거지하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씻자 씻어라 이제 씻을 시간이다 여러 번 잔소리하는 게 당신도 뭔가 하긴 하는구나.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났네. 조금 안심했다.


그래, 남편밖에 없지. 옛말에 자식이 해주는 밥은 서서 먹고 영감이 해주는 밥은 누워서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남편과 차 한 잔 마시며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네가 똑똑하지 않을 수 있어. 그렇게 눈으로만 봐서 무슨 공부가 돼? 손으로 써서 외워야지.”

남편이 식탁에 앉아 한자 공부를 하고 있던 아들에게 하는 소리였다. 난데없이 무슨 참견이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쓰면서 외우는 게 효율적이라는 말을 어쩌다 잘못 표현한 거겠지, 똑똑하지 않다는 저 말은 얼떨결에 잘못 튀어나온 거겠지. 움찔했지만 한 번은 참았다. 좋은 마음으로 남편과 잘 지내 보고자 나오지 않았나. 그런데 잘하고 있는 아이 옆에 붙어서 또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7급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아빠는 한자 2급이 있다는 은근한 자랑도 빼놓지 않으면서.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저 남편이라는 인간은. 내가 10년에 걸쳐 공들여 쌓아 놓은 아이의 자존감과 즐겁게 공부하는 마음을 어쩌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릴 수 있는 걸까. 혓바닥도 유전인 게 확실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져버리는 저 대책 없는 혓바닥. 듣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뱉어내는 끔찍한 문장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잘하고 있는 애한테 무슨 똑똑하네 마네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내가 눈으로 보고 뜻만 찾으라고 한 거야. 기가 막혀서. 세상에 어느 누가 당신한테 그렇게 말해? 당신은 안 듣는 말을 왜 애한테 해. 당신이 한자 2급인 게 무슨 상관인데. 공부 잘하고 있는 애 옆에 붙어서 무슨 그딴 소리를 하고 있어.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이는 화가 난 엄마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아빠 사이에서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차 한잔의 대화는 무슨, 다시 마음의 문을 닫고 안방에 들어와 누워버렸다. 진심으로 이 인간을 아빠로 붙여 두어도 괜찮은 걸까, 결혼하고 지금까지 수백 번도 더 한 고민을 다시 하면서.


내가 하는 말 중에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얘네들이 언제까지 김진우 김진아 일 줄 아냐’는 농담이다. 최진우 최진아가 될지 박진우 박진아가 될지 아예 내 성을 따라 문진우 문진아가 될지 모르니 김 씨일 때 잘하라고 하면 남편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진짜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받아친다. 모르는 소리. 이런 말을 진짜 하고 싶지 않은 건 내 쪽이다. 그러니 내 십자가야 생각을 좀 하고 살자. 제발.




*메일ㄹ 뉴스레터 '마흔 일기'로 발행한 글입니다.

https://maily.so/moonzakka/posts/40a5c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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