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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Dec 22. 2023

남편은 죽었다 깨도 모르는 것들

김비서 시리즈 : 리얼 부부 현실 에세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다가 김비서는 죽었다 깨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갖고 싶은지 산타의 의중을 숨기고 물었다가 품절되기 전에 미리 사서 몰래 포장해 놓고 포장지와 선물을 감쪽같이 숨겨놓는 시간. 그런 아슬아슬한 즐거움을 김비서는 모른다. 해마다 생일 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것 내 몫이었으니 알 리가 없다.


키즈노트와 학교종이 앱에서 수시로 울리는 알림과 그 공지사항 속 기억해야 할 날짜들.

넉넉하게 나온 120 사이즈와 딱 맞게 나온 130 사이즈 사이에서의 고민.

자다가 깨서 이불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아이들을 발.

잠꼬대 하던 아이들 혼잣말.

평소와 다른 숨소리에 맞춰 조절하는 가습기 분무량 같은 것들도 모를 것이다.


그것뿐일까.


뒤돌아 서면 어느새 자라 있는 손발톱과 앞머리.

친절한 의사와 잘 듣는 약을 처방해 주는 소아과.   

관심사에 맞춰 사놓고 무심하게 아이 주변에 펼쳐놓는 책.

친구 집에서 놀고 온다는 아이에게 아파트 이름과 친구 이름을 물어 적어두었던 카톡 메시지.

놀이터에서 친구에게 맞고 들어와 우는 아이를 달래며 잠 못 자던 밤.

자꾸 넘어지는 아이의 걸음걸이를 오래 살피는 눈치.

카레에 작게 다져 넣는 브로콜리.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온도로 데운 우유.

동네에서 평가가 좋은 학원에 대한 정보.

단원평가를 하고 받아온 90점짜리 시험지.

아이의 주민번호 뒷자리.

담임 선생님의 성함.

가장 친한 친구들의 이름.


더 어릴 때도 몰랐다.


배고플 때 새 부리처럼 모아지는 아기의 입모양.

안아서 재우다 침대에 눕혀도 깨지 않을 타이밍.

아기와 외출할 때 챙겨야 하는 수십 가지 준비물.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 간격.

앞으로 맞아야 할 예방접종.

개월 수에 맞는 평균 몸무게.

잘 먹는 이유식.

낮잠 자는 시간.

우는 이유.

달래는 방법.



4인 테이블에서 앉아야 하면, 아이 둘은 모두 내 옆에 앉으려고 싸운다.

'이번에는 오빠가 엄마랑 앉자. 대신 다음에 하나가 엄마랑 앉아. 아이고 착하지.'

'힝! 나 엄마랑 앉고 싶은데.'

'엄마 나 엄마랑 앉으면 안 돼요? 저번에도 하나가 엄마랑 앉았어요.'

아빠 옆자리에 앉는 게 벌칙도 아닌데 어르고 달래서 번갈아 순서를 정해야 한다. 가끔은 자리에 앉는 것 하나 이렇게 힘들 일인가 주문을 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산책을 나가면 저 앞 혹은 저 뒤에 김비서 혼자 핸드폰을 하고 두 아이는 내 양옆에 딱 붙어 양쪽 귀에 대고 저마다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우주야 게임이나 역사는 아빠가 더 잘 아니까 아빠한테 얘기할래?'

'엄마랑 얘기하는 게 재미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나는 뚝 떨어져 걷는 김비서를 보며 언제까지 핸드폰은 좀 넣어두고 아이들과 함께 걸으라고 알려줘야 하나 고민한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들과 나의 끈끈한 연대와 채워지지 않을 외로움에 대해 남편은 모른다. 안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나는 싸울 의지를 잃는다. 한때는 우리와 엮인 적 없는 날들을 언젠가 후회할 거라 생각했다. 10년을 그렇게 살았으면서 아직도 모르겠냐고. 혼자서 누워 쉬는 날들이 언젠가 당신을 외롭게 만들 거라는 게 나는 뚜렷이 보이는 데 두렵지 않은지 따져 묻고 싶었다. 어서 우리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고단하지만 행복한 이날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은 불투명한 존재감으로 우리 셋이 쌓아가는 추억을 조금 비켜나 관망하는 것이 어쩌면 저 사람의 진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헌신하고 있는 주 양육자가 있으니, 그것도 당연한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 자신은 한 발자국 물러나 있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할 지도. 오히려 그럴 수 있어 좀 수월하다 오히려 잘 됐다 여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커서 기억하는 건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 나란히 걸으며 마주 잡은 손 같은 평범한 것이라 믿는다. 소소한 대화와 자주 스치는 손길이 어른이 되어 닥치는 불행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남아서 사랑받았던 기억과 평온했던 날들로 이 아이들을 지탱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이 매 순간이 소중하다. 사랑해 주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안타깝다. 안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나가는 저 사람의 시간에 조바심이 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의 채워지지 않을 외로움에 대해서도 김비서는 모른다. 그러니 불쑥 튀어나오는 분노의 출처를 몰라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원망의 역사는 너무나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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