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디자인 팀 리드로 일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 (1)
#1. 새로운 곳에서
MBTI에 대해 여전히 참 많이들 물어보신다. 태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MBTI는 조금 친해지면 바로 물어보는 것 같다. LINE 프사에 본인의 MBTI를 걸어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얼마 전부터 나이는 물어보지 않아도 MBTI는 꼭 물어보곤 한다.
나의 경우엔 한국과 일본에서 살 땐 줄곧 ENTJ였다. 빼박 ENTJ. 하지만 태국에 온 뒤부터 아주 근소한 차이로 ENFJ가 되었다. F 50.5%, T 49.5 % 정도. 주변에 워낙 F 성향의 귀여운 태국 친구들이 많아 자연스레 변화하게 된 것이다. 좋은 기운이 물들었고 이렇게 변화된 것에 대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올해 2023년부터 태국 모 기업의 디자인팀에서 팀 리드를 맡게 되었다. 7명의 태국인, 1명의 대만으로 구성된 디자인팀이다(곧 베트남 크루도 1명 더 추가될 예정) 이 회사에 와서 프로필을 적을 때에도 MBTI 적는 곳이 있었다. 이건 이제 일반적인 패턴이라 그러려니. 그리고 팀원들에 대한 정보를 HR에서 전해받았다. 세상에! 모두가 F 성향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F라서 잘 이해하고 좋을 것 같네!’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이와 매우 달랐다. 아니, 달라져야만 했다.
주위에 있는 디자이너 친구들을 둘러보면 다른 업계에 비해 F 성향이 많이 있다. 디자인이라는 게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그런 학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감각에 예민해야 하고 따라서 좀 더 감정적인 부분에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뭐 모든 사람, 모든 디자이너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팀 리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디자이너 생활 10년 차에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싶기도 했다. 더욱이 이곳은 한국어의 모국어 국가도 아니다. 지금의 회사는 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지만 디자인팀은 태국어로 소통하는 그런 구조이다. 이래저래 우당탕탕하며 하루하루 팀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렇게 팀장이 된 지 2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문득 다시 T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구글링을 해보니 F는 감정적인 부분에 많은 관심을 두는 반면, T는 객관적인 사실에 초첨을 둔다고 한다. 감정적인 부분에 치우쳐서 팀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로봇도 아니고 어째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나 싶다. 팀 리드가 되니 감정을 소모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다. 어느 날은 회의만 하다 끝난다. 회의는 좋은 방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여러 팀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다. 항상 좋은 얘기만 하다 나오는 건 아니니 어떨 때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팀원들과 회의를 하다 보면 또다시 F의 기질이 올라오곤 한다. 그럴 땐 속으로 T 버튼을 눌러주곤 한다. 팀원들은 'T발 C야?'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킵고잉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한 팀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오늘 이 시간도 영 쉽지 않다. F와 T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하는 사람. 나야 나. 다시 MBTI를 검새 해보니 어느새 다시 ENTJ가 되었다 ㅋㅋㅋ
좌우로 F 네 명 그 사이에 낀 T. 그래서 로고고 뚝딱 만들어 보았다 ㅋㅋㅋ 하루하루 너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제 겨우 팀장 4개월 차인데 벌써 에피소드가 마구마구 넘쳐나고 있다. 그냥 흘려보내기엔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많아 잘 정리해 두었다가 재밌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이 기록의 첫 번째 목표. 그리고 다른 목표는 누군가 태국에서 디자인 업종의 일을 하거나 태국인들과 함께 일 하는 팀장이 있다면 공유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해외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것도 있다. 아직은 그 누군가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계속 연재해 나가다 보면 누군지 알게 될 터.
그나저나 내일은 아침부터 하루종일 미팅이 5개가 기다리고 있다. 정신 똑띠 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