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울림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견(絹)'이라는 소재가 있다. 이것은 누에고치에서 얻은 명주실로 짠 섬유이다. 얇고 성기게 짠 무늬 없는 흰 깁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견이라는 소재는 마치 사람의 '기억'을 연상시킨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그런 모습이 아련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애틋하기도 하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늘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오고 있다. 가족의 사업, 대학교 교환 학생, 해외 취업, 국제결혼 그리고 이민의 과정을 겪어오며 싱가포르, 토리노, 도쿄 그리고 7년 전부터는 태국 방콕에서 거주를 하고 있다.
이런 해외 살이가 지속되다 보면 여러 가지 많은 기억을 동시에 해야 할 때가 자주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중요하게 기억을 해야 할 것들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기억들이 소리 없이 증발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고 슬픈 일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들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애를 썼다. 침대 머리맡엔 늘 작은 노트와 볼펜 여러 자루를 두었고 화장실 샤워 부스 안에도 방수 종이와 필기구를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기록'들로 남겨두어야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
태국 생활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무렵 '브런치 스토리'를 만나게 되었다. 디자이너, 작가, 강사 그리고 통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기억들이 만들어져 나갔다. 이럴 때마다 브런치 앱을 켜고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텍스트로 와르르 쏟아내었다. 사라지면 아쉬울 찰나를 브런치를 통해 부지런히 기록해나갔다. 글을 쓰면서 내 삶에 브런치가 잘 자리 잡고 있어 다행이고 든든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전혀 알 수 없는 허무함이 크게 밀려왔다. 해외 생활에 대한 의문점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했다. 내가 오롯이 책임을 지고 선택한 태국으로의 이민이었기에 마음이 힘들 때가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외로운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땐 세계 곳곳에 계시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귀한 이야기를 읽으며 힘을 냈다. 울렁이고 술렁이던 날들 속에서 뉴욕에 계시는 작가님의 한 문장, 파리에 계시는 작가님의 단어 하나로 큰 위로를 받고 이내 마음을 잠재웠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 계시는 작가님들로부터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감하는 경험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난 적이 전혀 없는 사이에서 브런치의 글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작고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오늘 내가 태국 방콕에서 쏘아 올리는 작은 이야기가 지구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누군가 내일 하루를 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지금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야 하니깐.
오늘의 너와 내가 내일은 조금 더 선명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