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펀, 타이베이, 대만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캐릭터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 개강을 앞둘 무렵 일주일의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무작정 대만으로 가기로 하고 티켓을 끊었다. 취두부에 꽂혀 갔다는 사실은 아직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
작은 캐리어 하나를 들고 도착한 타이베이는 매우 습했다. 혼자 여행을 가면 늘 비행기 티켓 구매와 숙소 예약 외엔 아무 계획을 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T형 인간인데 여행에서는 늘 F형이다. 대만 여행 역시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래도 5일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순 없어서 일단 숙소에 가 체크인을 하고 프런트에 계신 직원에게 취두부 맛집과 갈만한 곳 몇 군데를 추천받았다. 그렇게 첫날엔 시내 구경을 어슬렁하면서 취두부와 버블티를 내내 사 먹었다. 다 무너져 가는 재래시장에서 먹은 취두부는 내 인생의 취두부였고 아직도 그 순위는 변경되지 않았다.
둘째 날이 되어 진과스와 지우펀을 가려고 나섰다. 이 둘을 묶어서 간다기에 그러려니 하고 갔다. 진과스에 있는 황금 박물관에서 광부 도시락을 먹은 기억이 난다. 양철 도시락통을 귀여운 광부 캐릭터가 그려진 손수건으로 감싸 묶어 팔았다. 대만은 일본 같은 느낌이라 이런 귀여운 제품들이 많아 내내 눈이 돌아갔었다. 그리고 걸음걸음마다 작고 귀여운 쓰레기를 계속 샀던 것 같다.
오후에는 지우펀으로 넘어갔다. <센과 치히로>에서 나온 아메이차루는 꼭 가보고 싶었다. 도착해 보니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애니메이션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먼저 보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의 까만 머리만 보였다. 마치 개미떼 같았다. 그래도 개미들 사이를 헤치고 꿋꿋하게 혼자 찻집의 명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홍등에 취해 그렇게 몇 시간을 책을 보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해질 무렵엔 아름다운 석양에 홀린 듯이 밖으로 나가 해가 바다 수평선 넘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취두부 맛집에 찾아가 저녁을 먹었다.
거리가 완전 어두워졌다. 베이맨역까지 되돌아가야 하는데 버스 줄이 심상치 않았다. 이 정도라면 내일 아침이 되어야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택시가 종종 보였다. 혼자 택시를 타고 내려가려고 생각하다가 방향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뒤에서 내 나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일본인 두 명도 같은 방향인 것 같았다. 나는 귀가 밝고 그 당시엔 일본 회사와 미팅을 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다가가 ‘같이 택시 타고 역까지 갈래?’라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곧 도착한 택시 한 대 앞 좌석에 내가 먼저 앉았고 그 둘은 뒷 좌석에 앉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택시기사 아저씨와 일본인 A가 대만어로 한국 사람에 대해 비평과 비하를 하기 시작했다. 왜 어쩌다 한국인과 함께 택시를 타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나에 대한 앞담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데? 하지만 나는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어릴 적 중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 일상적인 회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했지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 20분 정도를 모르는 척하며 웃고 있었다.
택시가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며 중국어로 택시기사 아저씨와 일본인 A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희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여기에서 내리기 전에 사과를 하고 떠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것 같다. 갑자기 택시 안이 싸늘해졌다. 모두 당황한 기색이 분위기로 느껴졌다. 곧바로 택시기사 아저씨가 웃으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일본인 A도 덩달아 사과를 하며 내가 내야 할 금액까지 함께 지불했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려 일본인 두 사람을 잡으려는 순간 그 둘을 갑자기 전력질주를 했다. 그리고 플랫폼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내게 멱살을 잡힐 것을 예상하고 그렇게 도망갔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