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대생 무씨 Jul 20. 2020

당신의 MBTI 유형은?

[07/16] 의대생의 자기소개서 작성

1번 문항: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경험에 대해,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1000자 이내)
2번 문항: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3개 이내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1500자 이내)
3번 문항:학교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1000자 이내)

아마 수시 전형으로 대학을 입학한 사람이라면 보자마자 진절머리가 날 것이고, 지금쯤 슬슬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3 학생이라면 골머리를 앓을 문항들이다. 매년 이 시즌이면 의대생인 나, 무씨에게는 의대를 들어가려면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냐,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교 활동을 쓰라는데 한 게 없다 등 자기소개서에 관련한 다양한 문의들이 쏟아진다. 실제로 내 동기 중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싫어 정시를 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한국 학생에게 자기소개서는 악몽과도 같아 보인다. 그럼 요즘 핫한 MBTI가 자기소개서와 무슨 관계냐고? 한국에서 예전에는 혈액형, 최근에는 MBTI 성격유형분석이 붐을 일으키는 것도, 자기소개서를 쓰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것도 다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모른다. 아니, 알아갈 시간이 없었다.

아니,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나 자신을 아는 나마저 나를 '잘'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 우리를 판가름하는 것은 우리의 성향이 아닌 내신 등급이었고 매 시험마다 오르고 떨어지는 숫자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가장 현실적으로 우리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노력은 나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수학 문제 몇 문제를 더 푸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학 문제를 푸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서 기술해 보라고 던져지니 자소서가 자소'설'이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소개서를 부모님 혹은 입시학원에서 대리 작성을 하는 관행이 벌어지고, 심지어 최근에는 MBTI 관련 영상에 여기 적힌 유형 글을 끌어모아 자기소개서에 적고 싶다고 하는 댓글이 달릴 정도이니...

 

나를 모른다에서 오는 문제는 단순히 자소을 쓸 때의 창작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역할만이 아닌 삶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제삼자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이 떠오르는가? 제삼자라서 꺼려진다면, 친구 또는 가족이 그렇게 묻는다면? 무슨 면접도 아니고  생각만 해도 오글거리거나 쑥스러운 게 대다수의 반응일 것이다. 친구에게 매우 쉽게 '넌 MBTI 유형이 뭐야?'라고 물으면서도 '넌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하기는 참 꺼려진다. MBTI 질문지 몇 개로 사실 우린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생각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MBTI는 우리의 성향을 정확하게 분석해주지 못하는데도 말이다.(*실제로 심리학에서는 MBTI에서처럼 사람의 성격이 외향, 내향, 계획형, 탐색형 등으로 딱딱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 정도를 나타내는 단순 척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자면, EBS에서 진행한 것이었는데, MBTI처럼 성향에 관련된 질문지를 연구 참여자가 풀게 한 후 그 결과지를 심리학 전문가에게 받아서 그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하는 실험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연구 참여자 대부분은 매우 높은 신뢰도를 보이며 자신의 성격을 잘 반영하였다고 했다. 사실 그 결과지는 질문지를 전혀 읽지 않고 대략적인 사람의 성향을 두리뭉실하게 기술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실험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혈액형을 통한 성격유형분석이 한참 유행이었을 때였는데, 내가 A형 대표주자라는 믿음에서 나를 독립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깨달음은 이후 무씨가 되어 혈액형은 RBC(*적혈구)의 세포막에 붙은 당단백질의 종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더 확실해졌다. 


이쯤 되면 MBTI로 나 자신을 파악해보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깨졌을 텐데(최소한 이걸 이용해 자소서를 작성해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기를..!) 그럼 나 자신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라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우린 또다시 마주하게 된다. 쉽고 명쾌한 길이 있었다면 MBTI 같은 걸로 성격유형을 분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교과목으로 교육과정에 쏙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이 글을 마치고 자기소개서에 대한 질문들을 또 답하러 갈 무씨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나 역시도 없다. 다만, '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 자신을 최대한 노출시키는 것, 그것이 가장 실현 가능한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이를 나의 가족, 친한 친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는 것이다. '넌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이 '넌 MBTI 유형이 뭐야'라는 질문만큼 접근 가능해질 때까지... 

작가의 이전글 운동은 만병통치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