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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대생 무씨 Jul 24. 2020

단발병,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07/21] 단발병에 대한 의대생 무씨의 돌팔이 처방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 의복과 함께 장발의 여성들에게 찾아오는 유혹이 있다. 바로 '단발병'이다.

단발병에 대한 대처를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단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바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있고, 여기저기 단발 사진을 수집하고 주변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갈팡질팡하는 두 번째 부류가 있다. 단발'병'이라고 이름이 붙어질 정도인걸 보면 후자가 조금 더 우세한 것 같기는 하다. 나는 편의점에서 하나 고를 때에도 10분씩 걸리고 그러다가 그냥 나올 때도 있는... 심각한 '결정장애'이기에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그런데 몇 장의 사진을 찾든,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든, 최종 결정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까?


혹자는 머리 자르는 게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단발병은 단적인 예시일 뿐,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무슨 옷을 입을지, 밥은 뭐 먹을지에서부터 일상에 수많은 자질구레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들은 미미하게나마 우리의 그날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그 영향이 매우 미미하여 고민하는데 투자한 에너지와 시간이 더 아까워질 때도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그토록 입기 싫었던 교복이 그리워지는 것도,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가 하나의 복장만을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결정장애로서 이러한 선택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잡아먹게 되는 것을 줄이고자 나는 다음의 3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먼저 단순한 결정 기준을 세워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어떤 삼각김밥을 고를지 고민이 될 때에는 가장 유통기한이 긴 것 혹은 칼로리가 낮은 것, 어떤 옷을 고를지 고민이 될 때에는 맨 오른쪽에 있는 것 등의 기준을 세워두면 훨씬 더 고민이 준다. 매번 헤어스타일을 바꿀 때마다 직모에다가 숱도 많다 보니 파마를 한번 하려 해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도 쉽게 머리가 풀어지다 보니 그 후부터는 미용실에 돈을 들이지 않고 생 직모로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이때 나의 결정 기준은 '시간'이었고 2년 동안 미용실을 한 번도 안 갔더니 시간은 물론 한 번 갈 때 몇 십만 원씩 나가게 되는 지출도 아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셀프로 숱도 치고 상한 머리도 잘랐는데, 그럼에도 머리를 계속 기르니 원래 숱도 많은데 머리를 씻고 말리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앞선 방법으로도 결정이 안 될 때에 나는 가능하면 새로운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A와 B를 재보고, 결정 기준을 세우려 했는데도 고민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선택에 대한 호기심과 익숙한 선택이 주는 편안함이 대충 50대 50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새로운 것을 선택하면 설령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지라도 이 선택은 나와 맞지 않았다는 경험치라도 누적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선택 또는 도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위의 만류를 받을 때가 있다. 만약 그것이 어떤 합당한 이유가 아닌 단순히 '넌 그거 한 번도 안 해봤잖아'라면 과감히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가장 안타까운 후회가 '그때 그걸 해보았더라면...'이다. 내가 한 번도 안한 단발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의대를 다니면서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을 때도, 주변에서는 같은 이유로 말렸다. '지금도 괜찮은데 굳이 새로운 걸...'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내가 막상 단발을 하고나자, 중국어를 배워 어학 연수를 신청하고 HSK 5급을 따자 나의 도전에 대해 멋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해도 똑같이 후회하고, 안 해도 똑같이 후회할 거라면
과감히 도전해보자 


마지막 방법이 내가 이렇게 선택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쓴 이유이다. 바로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이 의미 있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단발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는 이 선택을 좀더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어머나 운동에 동참해 머리카락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어머나 운동'이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 있는데 린 암환자를 위해 리카락 눔운동의 약자이다. (*염색, 파마를 하지 않고 25cm 이상 기른 머리카락이라면 자르거나 빠진 머리카락 모두 기부 가능하다)

이번 학기에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대해 배우면서 성인과 달리 백혈병이 약 30% 정도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항암 치료가 기본이 된다고 배웠었다. 그 당시 항암제별로 부작용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대표적 부작용 중 하나인 머리카락 빠짐에 따라 어린 아이가 겪게 될 심리적 충격을 덜어주고자 가발을 착용하게 되는데 인모로 만든 가발은 고액이라 쉽게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발이 소아암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어머나 운동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소아 백혈병은 약물로 완치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고 항암요법을 하는 과정에서 소아환자가 겪게 될 고통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력 있는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고, 명의는 환자를 치료한다. 

누구나 명의가 되고 싶지만, 의대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진단과 처치에 대해 쏟아지는 내용을 배워나가다 보면 너무 질병 치료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방지하고 환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다루기 위해 의사에게도 인문학 공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다시 체감할 수 있는 하루였다.


        단발을 하기로 결정하였다면, 머리카락 기부를 통해 그 선택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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